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신1:28~33)
 
★ “들릴라가 삼손의 진정을 다 토함을 보고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을 불러 가로되 삼손이 내게 진정을 토하였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이 그를 잡아 그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로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이 가로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다 모여 그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가로되 우리 토지를 헐고 우리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붙였다 하고 자기 신을 찬송하며.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로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그 집에서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도 거기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의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삿16:18~28)
 
 
오늘날은 시대의 흐름이 너무 빨라 잠시 스쳐가는 조건에도 금방 손을 놓아버리고, 금방 좌절하고, 금방 열을 받아버린다. 
이러한 조건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내성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으면 천만 다행이지만, 
윗대로부터 버려야 될 것을 버리지 못하고, 갖추어야 될 것을 갖추지 못한 조건이 우리 몸속에 심겨져있어 
다른 사람은 쉽게 넘어가는 것도 나 자신은 넘어가지 못할 때가 있고, 다른 사람은 감사하는 것도 나 자신은 감사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러한 조건이 있을 때는 누구를 탓하기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심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실을 바로만 기억하면 어떠한 조건이 우리 앞에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좌절하지 않지만, 
이 사실을 바로 기억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덫을 만들어 제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가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신1:28~33)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일을 정리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사고의 조건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 때 그 사실을 어느 때든 물리칠 수 있게 서로가 서로를 도와서 누구도 낙심치 않게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나름대로 조금 깨달았다 하고, 조금 자기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의 첫 걸음에 사탄의 조건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 말이 맞다. 하지만 그 일을 헷갈리게 하는 사탄의 조건 또한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사실을 방임한 상태에서 첫 발을 내딛으면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치나? 왜 이런 일이 내 앞을 가로 막나?’하게 된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뛰어내리라고 말할 때는 부모가 그 일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는, 그 명령을 우리에게 들리게 하실 때는 그 일을 책임지신다는 것이기에 감사하는 데부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 그들 앞에 내놓았을 때는 믿고 따르기만 하면 주시고자 예비 된 사실인데 믿지 못한 데서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다. 
 
(삿16:18~28) 우리가 믿게 되면 지난날 삼손에게 심겼던 그 일곱 가닥의 머리카락과 똑같다. 
문제는 우리가 믿지 못하고 우리의 조건대로만 일을 정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하셨다.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마음에 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6:30)고 하셨다. 
지난날 삼손에게 허락하신 일곱 가닥의 머리카락과 오늘날 우리의 이 믿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믿음을 갖추게 될 때 삼손의 원래 모습처럼 우리도 똑같은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이런 능력의 사실이 언제나 우리에게도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좌절하거나 흔들리는 것 자체가 죄가 된다. 
우리를 믿고 맡기신 세상을 우리가 바루지 못하고 스스로가 좌절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된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 조건을 내세울 때는 어디까지나 자식을 위해, 자식을 사랑해서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그 일을 부모가 책임지고 자식에게 맡긴 것이다. 그 사실을 자식이 내동댕이치거나 뒤로 물리면 그 자체가 부모에게 잘못을 하는 것이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우심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머리카락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세상의 조건에 속아 들릴라에게 자신을 맡겨서 비밀을 다 토로하고 끝내는 눈이 빼이고 맷돌을 돌리는 조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조건에서 마지막으로 놀림감으로 불려나갔을 때의 조건은 너무나 비참했을 것이다.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삿16:22) 
성경에서 이 말씀을 부각시켰더라면 뭔가 모르게 마음이 후련할 텐데, ‘머리가 자라는 것은 당연하지’ 하고 그 일을 가볍게 여기게 만들어 놓았다.
말씀을 보아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깨닫지 못하게, 믿는 자에게는 능력으로 주어지게 주신 말씀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나타내신 부분이다. 비록 잘못을 저질러 사랑을 저버리고 자신을 세상에 맡겼던 삼손이지만,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삼손의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만드신 것이다.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 벌어진다. 우리의 어려움과 답답함, 좌절 가운데 하나님께서 새로 사랑의 싹을 틔우심을 기억하자. 
지난날 삼손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자람과 같이 좌절과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심고 새 소망을 심는 사랑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 하심을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나타내신다. 
 
삼손은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죽음을 앞둔 조건에서 기도를 드렸지만(삿16:2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렇게 기도를 시키셨다. 
우리가 죄악 된 세상 가운데 속해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악의 속성이 우리 몸에 심겨져 있음을 먼저 아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렇게 기도를 시키셨다. 
어려울 때나 괴로울 때, 어느 때나 우리에게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깨닫게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언제나 어려움은 닥친다.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게 다가오는 모든 매사에 똑같이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살아계심을 나타내신다. 
능력의 사실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게 어느 때나 간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내가 어제 잘못했다고 했는데 오늘 또 잘못했다고 하니 너무 부끄럽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워도, 창피해도 다시 하자. 
우리가 자녀를 키울 때도 “다시는 안할게. 말 잘 들을게” 하고 돌아서면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이렇게 우리가 자라가는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키워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실을 아름답게 보시고 우리의 사실을 통해 역사하신다. 
어려움, 괴로움이 닥칠 때 좌절하기보다 어느 때나 하나님께 아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이끌어내기까지 머물지 않는 우리의 삶이 되자. 
 
(2007.07.01.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