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막10:28)
 
★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막10:46~52) 
 
 
우리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에 마음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참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줄 때는 자식이 받을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사랑을 베풀어간다. 
자식이 받을 수 없는 조건에서 사랑을 베푸는 부모는 없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준다는 말만 하고 안 받으면 “아, 받을 생각이 없구나” 하고 그 자리에서 단절해 버린다. 
사랑하지 않을 때는 그가 받을 수 있는 역량을 넘어 제시하기에 받는 사람이 그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은 처음부터 주기 싫었으면서 받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 일을 제쳐버린다.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받을 수 없는 조건이라면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그 일을 확산시켜서라도 자식에게 주어지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수많은 조건으로 다가오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일을 스스로가 닫아버리고, 스스로가 그 일을 뒤로 돌릴 때가 많다.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내 주위 형제들에게 덫이 되지 않게, 내 주위 형제들에게 감사가 되게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가누는 일에만 안간힘을 쓴다. 
신기하게 거울은 들여다보면 본 만큼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 거울을 들여다본 만큼 얼굴이 굳고 허점이 드러난다. 
우리 속에 욕심이라는 조건이 있기에 한평생을 가꾸어도 한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쁘고 멋짐을 자랑하기보다 자기에게 그러한 옷을 입힘에 먼저 감사하고, 자기를 지탱해 주는 뿌리와 가지에 감사하고 자기를 받쳐주는 꽃받침에 감사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감사치 못하는 예쁨은 일평생 덫이 된다. 
 
꽃이 꽃다워지려면 먼저 자기를 받쳐주는 꽃받침에 자신을 딱 갖다 붙여서 그 일을 감사로서 화답하는 꽃일수록 꽃다운 모습이 드러난다. 
꽃이 꽃다워지려면 자기를 지켜주는 가지에 걸맞은 크기와 모습을 지닐 때 꽃이 꽃다워진다. 
가지는 실낱같은데 호박꽃을 얹어놓았다면 이 꽃은 한순간은 서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넘어지게 된다.
 
그러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조건과 추구하는 좋은 조건을 고수하고 싶으면 먼저 여러분을 지탱하고 보호하고 가꾸어주는 조건에 감사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 조건은 아무리 주어져도, 아무리 가꾸어도 감사하지 못할 때는 일평생 덫이 된다.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멋을 드러내고 싶으면 자신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둘러서 있는 형제들의 조건에 먼저 감사하는 데부터 시작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되면 분명히 모든 것이 형통하게 잘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믿음 생활을 시작하고자 하면 먼저 믿음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그 일을 방해한다. 
그가 하는 믿음 생활이 부족하거나 말거나 그 삶을 시작하는 것만도 고마워서 옆에서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진정 먼저 믿은 사람의 할 일인데, 이렇게 저렇게 입을 대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믿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조건을 더해서라도 그가 믿음 생활에 도입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먼저 믿은 사람의 할 일이다. 
먼저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 뒤를 따라오는 형제들에게 참 믿음의 삶을 전가할 수 있게 설령 자기의 일이 조금 누락 되는 일이 있더라도 함께 도와서 그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먼저 믿은 사람의 할 일이다. 
 
씨를 뿌리면 가장 먼저 돋아나는 것이 떡잎이다. 
떡잎이 땅에 딱 붙어서 씨앗이 뿌리를 땅에 내릴 수 있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비가 와도 떠내려가지 않게 만들어준다. 
씨가 뿌리를 내리고 나면 떡잎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어느 순간엔가 사라지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자기의 소임이 끝나면 자기는 사라져도 자기를 통해서 그 본체가 살아나기에, 할 일을 마치고 나면 다음의 일은 다음 대에 맡기고 자기는 떠나버린다. 
하지만 씨앗의 싹 틔움을 처음부터 지켜본 농부라면 이 떡잎의 일을 그냥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도 이와 같이 하는데 유독 사람만이 그 일을 감사치 못하고 서로가 헐뜯고 서로가 걸려 넘어지게 만든다. 
사탄이 넘나들지 못하게 마음을 합해서 사랑으로 다독여 나가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자. 
이같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그 사랑에 부합되는 참사랑의 모습을 갖추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우리 후대들에게 이 아름다움이 전가되게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과 조건을 더하신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 자리에 놓이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것 같지만 사실은 짧은 세월이다. 
얼마 안 되는 세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도우시고 함께 하셔서 이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넘친다면 문제가 된다. 
 
우리가 천년만년 살 수 있다면 모르지만 언젠가는 삶을 마친다. 
먼저 내 삶을 충실하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 삶에서 그치기보다 후대들에게 더욱 아름다운 사실이 전가되게 만드는 것이 참 선대의 할 일이고, 참 깨달은 사람의 할 일이며, 먼저 된 사람의 할 일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내 대에서 일을 그쳐 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진정 후대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조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라오는 후대들에게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는 데까지 자기의 삶과 조건을 따르게 하는 것이 참 선대의 할 일이다. 
 
한 나무가 자라기에 앞서 떡잎이라는 조건이 있다. 
자기의 삶이 다함을 알면서도,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자기의 삶을 마치고 사라져 버림을 알면서도 다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나무를 재생시켜 나간다. 
처음 믿음의 삶에 도입한 발걸음이 있다면 그 믿음의 삶이 바르게 자랄 수 있게 자신이 떡잎이 되어서라도 그 믿음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돕는 것이 참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다. 
 
나약한 씨앗을 지적하기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그를 지적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이 떡잎이 되어서 그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돕는 것이 참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다. 
참 믿음의 삶, 참 깨달은 삶에 도입한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바르게 기억하고 이수하는 것이 할 일이다. 
실제 삶에까지 이 일이 도입되게 만들어 가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자. 
 
(막10:2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곧 고난당하실 것을 말씀하시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당할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누구라도 마음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누구 하나 그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일에만 치우쳐 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등극하실 때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하소서 하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이 열을 받아서 반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힐 일까지 사전에 예언으로서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그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예수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말하는데도 따르는 사람들은 전부 자기의 조건만 들고 나온다. 
베드로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나왔습니다” 하고, 야고보와 요한은 우리를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서게 해달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뒤따르는 무리는 자기의 병을 고쳐달라고, 자기의 조건을 돌아봐달라고 한다. 
 
그때의 조건이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똑같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과 그때의 모습이 같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자기의 눈먼 조건을 구원받기 위하여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지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자기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그를 꾸짖으며 잠잠하라고 한다.(막10:46~48)
 
옛날이나 지금, 또 이후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똑같이 벌어진다. 
누가 믿음의 삶에 조금 마음을 들이고 그 일에 적극적인 조건을 들이거든 그 일을 좋게 보고, 아름답게 보고 도와줄지언정 그 일을 삐딱하게 보고 훼방하는 자리에 놓이지 않아야 한다. 
신앙이 여린 사람,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바르게 신앙생활에 도입할 수 있게, 신앙을 바로 알 수 있게, 믿음을 바로 고수할 수 있게 도와줄지언정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의 조건에서 흔드는 지혜롭지 못한 일을 벌이지 않아야 한다. 
 
벽돌장이가 벽돌을 쌓아 올릴 때 먼저 시멘트 이긴 것을 벽돌 위에 얹어놓고 그 위에다 벽돌을 얹어간다. 
얹을 때 벽돌을 다듬는 칼로 벽돌들의 높낮이를 고르게 하면서 벽돌을 쌓아간다. 
높은 곳은 두드려 낮추고, 낮은 곳은 시멘트를 조금 더 넣어서 높이를 고르게 맞추어간다. 
진정 참 믿음의 삶에 도입한 사람이라면 전체를 보고 그 위에 참 믿음의 사실이 얹힐 수 있게, 어느 시기가 되어서 넘어지는 오류가 생기지 않게 자신을 바로 가눌 수 있는 믿음의 삶으로 자랄 수 있게 돕는 것이 할 일이다. 
 
이것을 자기의 조건에서 정리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하지만 따르는 사람들은 그 일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기의 조건, 자기의 어려움, 자기가 추구하는 조건만 주장한다. 
오늘날도 똑같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조건, 리더자가 바라는 조건을 서로가 협력해서 선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의 삶을 구사해야 하는데 자기의 조건에만 치우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높거나, 누가 뒤처지는 것을 반기지 않으신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똑같이 쓰임 받게 하시고자 우리를 불러 모으신 것이다. 
누구는 밑으로 가고, 누구는 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가는 사람은 그만한 능력과 조건을 갖춘 사람을 밑으로 둔다.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나무의 밑둥치로 삼는다. 
그리고 밑둥치가 바르게 자랄 수 있게, 혹여나 나무가 크고 난 뒤 옹이가 생겨 재목에 흠이 될까 해서 자잘한 가지는 하나씩 잘라버린다. 
큰 나무를 키워나갈 때는 나뭇가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나무 둥치를 쓴다. 
이 둥치에 잔가지가 나오면 옹이가 생긴다. 옹이가 생기면 결이 어긋나서 나무의 본 재질을 버려놓는다. 
그래서 자잘한 가지를 쳐버리고 곧게 자라 이 나무가 바른 재목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 간다. 
 
참 믿음의 삶에 도입한 사람이라면, 내 주위 형제가 참 믿음의 삶에 도입하고자 발을 디뎠다면 혹여나 덫이 생겨서, 혹여나 흠이 생겨서 스스로가 넘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 일을 세밀히 지켜보고 믿음의 삶에 바르게 도입할 수 있게 진정으로 돕고 가꾸어가는 우리가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아름답게 보시고 우리를 뽑으신 뜻대로 쓰임 받는 데까지 자라게 하신다. 
 
(막10:48~52) 예수님께서는 십자기를 앞두고 고민에 빠져있고, 둘러선 군중들은 자기의 조건대로 일을 정리하려고 하고,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 데도 더 크게 소리쳐 예수님을 찾으며 자기의 상황이 급박함을 알린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랑 가운데서 그의 모든 조건을 들어주셨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실제 생활에서도 이런 일들이 무수히 벌어진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사랑으로서 소경 거지 바디매오와 둘러선 군중들을 다독여나가셨다. 
자기의 급박한 상황을 다 뒤로 미루고 자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에 먼저 마음을 쓰시고 돌아본 그 일을 기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코앞에 십자가의 조건이 다다랐는데도 자기의 조건만 주장했던 제자들의 일을 벌이지 않아야 한다. 
  
내 개인의 조건도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도움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의 어려운 조건을 뒤로 미루고 사소한 조건도 놓치지 않으시고 돌아보신 예수님의 그 일을 일평생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우리에게도 예수님과 똑같은 일이 있을 것이다. 
나의 어려움, 외로움, 답답함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고 주위에서 일을 벌일 때는 그 일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어서 돌아보면서도 마음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란 사람이라면 내 일도 급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주위 형제들의 바램이 있다면 그 바램을 들어줄 수 있는 데까지 자라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예수님께서도 개인의 어려움과 긴박한 조건이 코앞에 다다랐는데도 자기를 향하는 도움의 손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랑으로 다독여 가셨다. 
그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다가올 때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랑으로 다독여가는 참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2007.07.15.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