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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16.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 등록일 : 2025년 7월 25일
  • 조회수 : 191

★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23:20)

 

★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출23:25~26)

 

 

사람의 일생은 얼마든지 감사로, 기쁨으로 평탄하게 살아드릴 수 있는 조건을 다 허락받고 태어난다. 

사람이 좀 더 안목이 넓어지고, 좀 더 생각이 넓어지고, 좀 더 사랑의 폭이 넓어진다면 모든 사실이 다 가능하고 

이러한 사랑의 조건, 감사의 조건들이 우리 주위에 진을 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당연한 복록을 스스로가 훼파한다. 

 

하나님께서 땅 위의 모든 사람에게 생을 허락하심은 허락하신 삶을 통해 자신을 바로 가누어갈 수 있도록 이끄시기 위한 사랑의 방편이다.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얻게 되는 과정도 사랑의 방편으로 주신 조건이다. 

이 사랑의 조건을 스스로가 남용하고 벗어나서 어려움을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이다. 

 

자기 가정이 못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내 가정이 잘 되고 싶으면 무엇보다 내 주위가 그러한 조건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만드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할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나름대로 자기 내면의 성격과 생각을 드러내고 싶어서 옷도, 화장도, 신발도 조금 이상하게 하고 다닌다. 

자기 내면의 생각이나 조건을 드러내고 싶어서 그러한 일을 벌이는 것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으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내가 아름답게 꾸미고 싶거든 먼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여자라면 누구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이 바램이다. 

내가 예쁘게 보이고 싶으면 진짜 여러분 생각에 별로인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그 사람을 밑뿌리부터 지키고 보호하고 그를 위해서 그 아름다움이 드러날 수 있게, 보람이 되게 만들어주면 모두가 다 아름다워진다. 

비록 그의 모습은 바뀌지 않아도 그의 마음 씀씀이나 그의 주위 환경 자체가 바뀌어서 모든 사실이 아름다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신앙의 조건도 이와 똑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모를 허락하심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라는 사랑의 방편이다. 

부모의 조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비춰지게 하는 것이 참 부모의 할 일이고, 

세상적인 사람이라면 부모의 위치를 통해 윗대 조상들의 사실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그렇지 못하고 그 사실을 자기에게서 머물게 한다면 가문의 수치가 되고 하나님께는 죄가 된다. 

 

우리는 도둑질, 사기, 살인을 죄로 알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의 그것을 죄로 보지 않는다. 

“야, 이 녀석아, 왜 그런 실수를 했니?”하며, 능력이 되는 부모라면 자기의 모든 재산을 들여서라도 자식을 그 지경에서 빼내고자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말은 이같이 사랑하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가 개개인의 조건에, 이성의 조건에, 세상의 조건에, 물질적인 조건에, 권력의 조건에 치우쳐서 이 말씀을 전해도 아예 귀에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세상적으로 망하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23:20) 믿고 나아갈 때 이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출23:26) 그에게 주어진 연한을 줄이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한 심령도 그에게 허락하신 날 수를 채우지 않고 떠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극한 상황이라도 믿음의 사람은 그에게 맡기신 사역이 있기에, 그에게 맡기신 임무가 있기에 그 임무를 다하기까지 그의 삶은 종지부를 찍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꼭 기억해서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자. 

 

믿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믿음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될 사람들이 세상적인 조건에, 자기가 안주하는 조건에 마음을 다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이다. 

어려움, 답답함,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사람 된 근본을 기억하면 한 순간으로 그 어려움에서 빠져 나온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자기가 사람 된 근본을 바로 알지 못하기에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똑같이 우리에게 하신다. 

지금도 세상적인 조건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시고자 예배를 허락하시고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이끄신다. 

지금도 이 땅 자체가 광야와 똑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맨 것과 오늘날 사람들이 헤매는 것이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 사실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려면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게 될 때 모든 사실이 아름다움으로 이끌림을 받게 된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으로 이끌림을 받을까? 

우리가 믿음의 삶을 고수하고 싶으면 믿음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세상적인 귀한 조건을 갖고 싶으면 그 조건을 지닐 수 있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올라간 만큼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듯이 승진하면 승진한 만큼 내 시야가 넓어져야 한다. 

내가 관용하는 폭이 넓어져야 한다. 내가 승진을 했어도 내게 주어진 그 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승진한 만큼 내가 선 자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려져야 하고 그 일을 포용하고 관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모든 사실이 내게 역량으로 주어지게 된다. 

 

사는 날 동안 내가 잘 나고 싶으면, 위에 올라가고 싶으면 먼저 내 주위를 좀 더 높게 보고 그 일을 지켜볼 수 있는 데까지 자라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세상적인 조건 가운데서 참 삶의 가치관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내게 주어진 사랑의 조건들, 나를 위해 허락하신 내 주위 형제의 조건을 포용하고 관용하고 사랑하는 데부터 자라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내가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주위를 포용하면 내가 올라가고자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올려놓으신다.

할 때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감사로 이어지게 된다. 

 

(2007.09.02.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