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신2:25)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자기의 생활과 조건에 치우쳐 허망한 것에 자기의 마음과 생활을 드릴 지라도 우리만이라도 우리를 위해 만물을 허락하신 그 사랑을 바라볼 수 있는 데로 우리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믿음의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부모가 사랑 가운데 자녀를 얻고 그 자녀가 부모의 바램을 따라 사는 자녀가 될 때 부모는 자기의 능력 안에서 그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고, 이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우선적인 조건에 치우쳐서 사람이 걸어가야 될 길을 저버린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어리석은 일이다. 
이런 잘못된 일이 생기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가 서로를 다독여서라도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이란 나 혼자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주고받을 수 있는 매개체가 있을 때 그 사랑이 빛을 발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땅 위의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믿는 자를 통해 그 사랑을 보이시고자 말씀으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전하신다. 
나 개인이 잘 되고 우리 가정이 잘 되는 것도 좋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의 사람의 조건에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부터 이 사실이 바르게 정립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이 사실이 바르게 정립되어서 우리의 후대들과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참 예표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데까지 자라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이 같은 삶을 살게 될 때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앞을 가로막지 못하고 그 어떠한 사실도 우리의 발걸음을 제지하지 못한다. 
신앙의 선조들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던 지난날의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똑같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줄 수 있는 데까지 자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개인의 조건에 치우쳐서 개인의 안일과 삶에만 치중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참 사랑의 가치관을 드러내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사랑을 보이신 그 사랑을 바라보고 실천하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우리가 되자. 
진정한 참 사랑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우리가 되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으로서 다독여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걸음마를 하는 아이 앞에 그 아이가 뛰어 넘지 못할 장애물을 놓아두는 부모가 없고, 아이가 먹지 못할 음식을 아이 앞에 두고 먹으라고 할 부모가 없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신5:16)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19:3)고까지 말씀하신다. 
‘경외’라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일 외에는 ‘경외’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여기서 ‘경외’를 쓴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일의 관문이 되라는 뜻에서 이 단어를 쓴 것이다. 
자기 속으로 난 자식이든 자기의 삶을 통해 키우는 내면의 자식이든 그 자녀들에게 참 삶의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참 믿음의 관문이 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경외의 대상의 관문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주위 형제들이 외로울 때, 괴로울 때, 답답할 때 그러한 조건을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인 냥 외면하기보다 언젠가는 나의 일로 돌아올 그 사실을 돌아보고 지혜롭게 다독여 갈 때 하나님께서 꼭 지혜와 능력을 더하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사실이 우리의 평생에, 우리의 후대들에게 머물 수 있게 바르게 지키고, 바르게 전수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신2:25) 이 같은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다독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참 믿음의 삶에 도입하는 사람이 되라고 주신 말씀이다. 
참 믿음의 삶에 도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 사랑을 이루는 사람이다. 
참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는 참 믿음의 삶에 들어가고 싶어도 참 믿음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우나 부모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자녀에게 참 사랑의 가치관과 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가 드물다. 
참 사랑은 어떤 것이냐? 참 믿음의 삶은 어떤 것이냐?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앞에 서기를 원한다. 자신이 대두되기를 원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서야 될 그 자리에 자기가 서고자 한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을 가로막는 죄가 무엇보다 큰 죄이다. 
부모가 되어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 앞에 서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그 무엇보다 자녀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한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렇게 말한다. 
진정으로 참 부모의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성경에서 ‘경외’라는 말을 썼을까? 
우리가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아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우리 앞에 앞장서서 나아간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일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랄까? 
 
(신2:25) 후대들에게 바른 참 삶을 보여주게 될 때 이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너희가 내 말을 믿고 따른다면” 이 단서가 붙는다. 
너희가 믿고 따를 때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하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그들 앞에 앞장서 나아갔을 때 두려운 존재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가르고 건너갈 때 애굽 병사들이 뒤따라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병사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물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두려운 존재가 된 것이다.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을 돌면서 소리를 한 번 지른 것 외에는 없다. 
 
우리가 나서서 스스로 총칼을 들고 우리 스스로가 머리를 쓰고 술수를 써서 세상을 두렵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진정으로 참 사랑의 모습을 갖추게 될 때 이러한 역사를 일으키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참 말씀이 되게 먼저 참 믿음의 삶, 참 사랑의 삶에 주저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이 같은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앞을 앞장서 나가시며 세상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이러한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제는 참 사랑의 삶으로 발걸음을 힘차게 옮겨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귀한 말씀이 말씀으로 살아서 역사할 수 있게 믿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 사랑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일평생 잊지 않는 우리가 되고 우리의 후대들에게 참 사랑의 가치관을 바르게 전달하는 일에 쓰임 받는 선대가 되자.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참 사랑의 가치관을 바르게 알려주는 예표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2007.10.14.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