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내가 해 아래서 또 보건대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있도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3:16~21)
 
★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5:18~19)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믿을까?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기에 자식이 부모를 믿는 것이지, 부모가 자식을 믿어주지 않으면 자식은 부모를 믿지 못한다. 
사람의 속성 자체가 벌써 죄의 속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믿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시지 않으면 단 한 사람도 믿을 사람이 없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명령한 땅으로 가라” 그 마음에 확신을 먼저 심어주셨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단 한 번 만남으로 그의 일생을 드렸다. 
아브라함도 단 한 번의 확신을 통해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 광야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사 우리 앞에 믿음의 삶을 심으시고자 그들을 뽑으시고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람을 세상에 보내신 연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된 우리들 누구에게나 똑같이 복을 심으시고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자기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복된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믿는 그 믿음을 스스로가 저버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그 믿음 자체를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 가운데서 스스로가 어려운 일, 복되지 못한 일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한 껍데기, 두 껍데기, 세 껍데기의 가면을 쓰게 되고, 끝내는 이 가면을 벗기 전에는 그 사람은 일평생 복록을 누리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결핍 되어있는 광야 길로 이끄신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런 조건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신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네 평생에 이 모든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일생을 살면서 고민하고 머리를 쓰기보다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세상에 보내시고, 이 믿음을 심기 위해서 조건을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만 되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부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각자를 믿으시고 각자의 심성과 형편 처지에 맞게 구역을 정해서 보내신 것을 믿을 수 있는 조건만 갖춘다면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있어야 될 자리,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오래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후대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예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진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사는 날 동안 우리 각자에게 허락된 복록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알게 하신다. 
나를 믿고 보내신 그 사실을 내 생활에 바로만 담아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록을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받는다. 
 
사람이 근본적인 일은 해결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가시적인 일만 주시하기에 관상이 변하는 것이다. 
사람의 관상은 자기가 이루어 놓은 생활을 통해 형성된 모습이다. 관상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진정 복록을 누리고자 하면 겉껍데기를 벗어야 한다. 
속과 다른 겉모습의 껍데기를 벗게 되면 각자에게 주어진 복은 분명 각자의 것이 된다. 
겉껍데기를 뒤집어쓴 만큼 사는 날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복록을 누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사는 날 동안 복록을 누리고 싶거든 뒤집어쓴 껍데기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야 한다.
벗으면 벗는 만큼 각자에게 주어진 그 복록을 빨리 되찾을 수 있는 조건을 얻게 된다.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더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랑이란 자기의 본 모습을 찾아가게 옆에서 지켜주고 보호하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시고 각자의 심성과 형편 처지에 맞게 세상에 보내시고, 각자에게 허락하신 복록이 우리들의 생활에서 한 가지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록을 잃어버리는 것은 죄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램을 걸고 그에게 심은 일을 자식이 저버렸을 때 그것이 불효다. 
창조주에게 받은 그 조건을 스스로가 저버렸을 때 그것이 죄다. 
세상의 부모에게는 불효이고 창조주에게는 이 사실이 죄인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날 동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죄인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잘못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그 복록을 누리게 만드는 것이 부모의 바램이다. 
아브라함이 애굽 땅으로 갔을 때 바로 왕이 자기의 아리따운 아내로 인해 자기를 죽일까 싶어 인간적인 마음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인간적으로 따지면 바로는 잘못한 것이 없다. 아브라함이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질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바로를 질책하셨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시고 세상에 보내셨기에 우리가 이 사실을 믿게 될 때 이와 같은 복록을 허락하겠다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해 그 복록이 우리의 삶에서 제외될 때 부모의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전3:16~21)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난 것은 가시적인 조건으로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사는 날 동안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믿으시고, 보내신 그 연유대로 믿음의 삶을 사는 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으시고, 보내신 사실을 따라서 믿음으로 부응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복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우리의 생활에 담지 못할 때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께서 각 사람을 믿으시고 세상에 보내셨기에 사는 날 동안 그 믿음의 삶을 우리의 생활에 담지 못할 때 사람이나 짐승이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말이다. 
 
(전5:18~19) 창조주께서 사람을 믿으시고 보내신 그 사실을 믿고, 보내신 그 사실을 자기의 생활에서 담게 될 때 이러한 분복을 받는다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사실을 그의 생활에 담게 될 때 그에게 참사람 된 조건을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구역을 정하시고,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범사를 일으켜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오심을 인정하고 감사로 화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사랑하심을 보여주신다.
 
우리의 후대들이 우리에게 와서 “당신의 믿음의 삶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보게 됨에, 내 삶의 복록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하고 예를 드릴 수 있는 조건을 일평생에 꼭 보기를 원한다. 
 
(2004.01.25.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