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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3.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깨닫는 자가 없도다

  • 등록일 : 2025년 9월 7일
  • 조회수 : 219

★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사57:1)

 

  

오늘도 여느 때와 똑같이 아침 해가 뜨고 날이 밝는다. 

세상에 치우친 사람은 아침 해가 뜨고 날이 밝아도 그의 마음이나 생활이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나날이 그의 발걸음이나 삶이 상승되어간다. 

언뜻 보면 똑같은 세상인 것 같고 똑같은 상황인 것 같지만, 그 차이는 판이하다. 

 

사탄은 항상 지켜보며 이러한 일이 생기도록 각 사람에게 고리를 건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삶이 머물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삶이 침체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계략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라고 부인해도 그의 삶이 세상에 머물러서 침체되면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우리의 삶이 진정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 되려면 갈릴리로 향한 물고기들이 나날이 상승함과 같이 소망을 향해 항상 우리의 삶이 상승할 때 ‘믿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이다.’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마태복음 5장에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의 삶이 날로 상승할 때에만 이러한 사실이 입증된다. 

 

믿음의 사람은 머물러서도 안 되고 침체되어 있어도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 하면 알고 믿는 것으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씨앗 중에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겨자씨라도 그의 삶이 살아서 상승할 때 큰 나무를 이룸과 같이 우리의 삶이 나날이 소망을 향해 상승할 때 사람의 구실을 하게 된다. 

 

지난날 우리 개개인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도 세상에 속했을 때는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들과 똑같은 생활권 가운데 움직이게 될 때 언뜻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언뜻 보면 한순간은 자라는 것 같이, 한순간은 살아있는 것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시기가 되어서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리고 침체되어 버릴 때 그의 모습이 바뀐다.

하지만 모든 씨앗 중에 작고 작은 겨자씨라도 그 속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을 때는 나날이 소망의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되고 큰 나무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사람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우리가 해야 될 바를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떠한 위치에 서서 내 삶을 살아야 될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언뜻 보면 그들이 잘 사는 것 같고, 그들이 지혜로운 것 같고, 그들이 부러운 것 같지만 먼 훗날 우리가 서야 될 자리를 바라볼 때는 그러한 모든 것이 허망함을 알게 된다. 

 

진정 믿음의 사람이 갖추어야 될 바는 ‘능력’이다. 

불이 일어나고 무슨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그것은 능력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에 속한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의 능력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먼저 형제에게 힘을 북돋워 주고, 형제에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진정 능력자의 할 일이다. 

나름대로 능력의 삶을 산다 하고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차라리 능력을 받지 않음만 못하다. 

진정 올바른 능력은 형제에게 기쁨을 주고, 형제에게 감사를 심고, 형제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을 터주는 것이 진정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다. 

 

진정 사람 된 가치관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느 때나 자기의 삶에서 물질을 구사하고자 하면 물질을, 능력을 구사하고자 하면 능력을, 조건을 구사하고자 하면 조건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올바른 믿음의 사람의 능력이다.

어느 때나 필요할 때 “주여 나를 도우소서” 간구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루게 하는 사람이 진정 올바른 능력자의 모습이다. 이제는 진정 믿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감사치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 좋은 여건을 허락해도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냥, 설령 그 일을 자기 코앞에 갖다 두어도 그 일을 바로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진정 감사하는 사람은 그 일이 보이지 않아도, 그 일이 저 멀리 있어도, 그 일이 깨알같이 작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갈멜산 산상에서 비가 오기를 기도하던 엘리야의 모습(왕상 18:41~45)에서 그가 처음 기도할 때 그에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러 차례 기도한 후에 손만 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큰비가 온다고 했을 때 그 사환은 속으로 웃었을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사람들이 우습게 볼만한 손만 한 구름에서 믿음의 사람은 소망을 걸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령 보이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앞에 아무리 큰 증거물을 갖다 줘도, 은혜를 입혀도, 자기에게 그 삶이 주어져도 감사치 못한다.

끝내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을 빼앗기게 된다. 이것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알지 못할 때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절대 없다.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가 싫은데도 억지로 맡기시는 일도 없다. 

단지 우리가 늦게 깨달았을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수차례 우리의 삶과 사고가 깨어나기를 바래서 혹여나 한두 번 해서 모를 까봐 세 번, 네 번 그것도 혼자만 들으면 잘못 들어서 오해 할까봐 여러 사람에게 알게 해서까지 말씀을 전해도 본인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남도 본인 자신에게는 순식간의 일이지만 진정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그 일이 이루어진다. 

한순간에 벌어지는 일은 절대 없다. 육의 일이 1초간이라면 영의 일은 여러 수천 시간이다. 

어떤 때는 수년, 수십 년이 걸린다. 그래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다’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벌이시는 일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치 못하는 사람에게는 한순간일지 몰라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나를 일깨우심을 알아서 감사로, 눈물로 화답하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어서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모습까지 바뀌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심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을 보기 원하심을, 사랑하는 자의 음성을 듣기 원하심을 알아야 한다. 

본인 자신은 한순간에 어떤 사실을 통해서 만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돌리게 만드시고 수많은 사건을 돌리게 만드셔서 그 만남을 허락하심을 볼 때 진정 가슴을 치고 통탄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바로 간파해서 진정 내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위치에 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될지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57:1) 화액이 뭘까? 세상의 어려움, 괴로움, 위험이다. 

그러한 사실이 닥치기 전에 그의 삶을 이끌어 감을 볼지라도 누구 하나 그를 사랑하셔서 그것을 피하게 하심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사랑하셔서 그 심령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어도 그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이 없더라. 관념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심을 알게 하시고자 이 말씀을 우리에게 보게 하시고 듣게 하셨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그 자식에게 은혜를 입히는 것이 그 사실을 통해서 어느 때인가는 그 부모의 자식임을 알게 하는 그 일에 그치지 않고, “내가 너를 건져줬다. 너를 위험에서 빼내줬다” 이 일을 기억하고 그 사실을 원하는 부모는 진정 올바른 부모라면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자기를 사랑하는 자녀를 그같이 하심을 알아야 한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그같이 이끌어 가시고, 그같이 키워가심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그같이 은혜를 베푸시고 키워 가셔도 그 사실을 은혜로 알지 못하고 그 사실을 감사치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같이 숨을 쉬고 눈을 뜨고 입술을 벌려서 찬송을 드리고 우리의 손길을 통해 감사의 예물을 드림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알게 한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이 모습을 갖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지 않으면 있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당연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실의 당연함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00.01.30.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