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 두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40~52)
 
 
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후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나사렛 사람으로 생활하셨다. 
나사렛은 큰 동네가 아니라 자그마한 동네다.
자그마한 동네라는 말은 그 사람의 일거일동을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그 삶을 담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모든 일이 사실임을 알게 하는 하나의 조건이다. 
예수님께서 실존의 인물이며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일을 예비시킨 줄 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구역의 일들, 비록 조그마한 일이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 거리가 되게 만드는 우리가 되자.
예수님께서 나사렛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삶을 굳혀나갈 때 세상을 위해 구세주로 오신 이임을 알게 하는 일에 좋은 귀감 거리가 되셨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구역이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이 임무를 잘 수행해 낼 수 있게 마음으로 궁구하고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을 이루어 나갈 때 하나님께서 모든 조건을 다 허락하신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일이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움이 될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까?’ 하고 마음을 합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모든 조건을 더하실 것이다. 
 
올바른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의 일이 앞서고 그 뒤에 개인이 일이 있다. 
문제는 신앙에서 항상 개개인의 일을 앞세우고 뒤에 하나님의 일을 두게 될 때 개개인의 일이 어려워지고 모든 일이 허사로 돌아간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사랑의 일을 먼저 앞세워 나갈 때 우리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는 말은 개개인의 일을 앞세울 때 모든 일이 다 안정을 찾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개개인의 일이 조금 힘들고, 마음에 안 들어도 사랑을 이루는 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 지혜롭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할 때, 우리가 감사치 못할 때는 억지로 붙들어 매어서라도 감사케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 한 가지도 그냥 벌어지는 일이 없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무조건 감사하는 것이 지혜롭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나를 일깨우시기 위해, 나를 순화시키기 위해 벌이신 일에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를 더하시기 위해 벌이심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감사를 더하실 것이다.
 
(눅2:40~52) 우리의 삶이 자라가야 한다. 
요셉과 마리아의 행각이 오늘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써 삶을 살아갈 때 이러한 일이 허다하게 벌어진다. 
“내가 매 주일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기도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 사람이다” 해서 태무심하게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자기의 삶을 놓치는 일이 벌어진다.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한순간의 행동이지만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는 매번 벌어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자리에 놓일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를 끌어올리시기 위해 조건을 일으키신다. 
그때 재빨리 올라올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지난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만나 그들과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심을 그 부모가 알지 못하고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다가 예수님께서 없어진 것을 알고 다시 올라와서 사흘 후에 예수님을 찾았을 때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많이 놀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일들이 허다하게 벌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항상 우리의 마음이 뜨지 않게, 우리의 생활이 뜨지 않게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 부모에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심을 알게 하신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서 바라봐야 될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도 조건을 일으켜서라도 그 사실을 알게 하시고자 일깨우심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잘못해서’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일깨우시기 위해 이 일을 일으키셨구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도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안다 하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혜롭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앞서갈 수 있는 조건을 다 허락하시고 앞서갈 수 있는 사고까지 다 허락하셔도 우리가 개개인의 생각에 치우치는 바람에 이 조건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끼치지 못할 뿐이지 이러한 조건들이 우리에게 다 다가와 있다. 
조금만 마음을 쓰고 조금만 마음을 합치면 쉬운 일을 스스로가 자원해서 어려운 일을 만들어낸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람 가운데서 키만 자란 것이 아니라, 세월만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총명과 모든 것이 같이 자랐음을 기억하자. 
우리도 한해 한해 우리의 생활이 더해갈 때 누구에게나 부끄럼 없이 담대하게 설 수 있는 각자가 되게 가꾸어가자. 
한 사람도 뒤처져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위치에 놓이지 않게 서로가 협력해서 아름다운 사실을 이루어 가자.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아름답게 보시고 기뻐하시며 우리의 사실이 드러나게 도우신다. 
개개인의 일이 뒤처지지 않게 개인도 힘을 써야 하지만 주위 형제들이 함께 협력해서 개개인의 일이 바르게 도모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 
 
(1999.12.26.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