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2:18~끝)
 
 
신앙인이 가장 먼저 갖춰야 될 것은 감사이다. 
우리가 먼저 감사하고 이 감사를 혼자만의 감사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 형제에게까지 끼치는 것이 아름답다. 
이 같은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영광 받으신다. 
우리가 알지 못할 때는 개개인의 생각에 빠져 나 하나의 삶에만 치우쳤지만, 알고 난 뒤에는 ‘나’ 하나의 삶에서 ‘우리’의 삶으로 옮겨가게 된다. 
 
수많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생존하지만, 그 생존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를 꺼린다. 
어디까지나 나 하나와 내 가정의 삶에서 그치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모의 세대가 가고 나면 어느 순간엔가 그들의 삶이 바뀌어서 부모 세대에서는 그 가정을 기억하지만, 자식의 대에서는 그 부모가 바라는 형제의 우애보다 자기들의 새로운 가정을 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자기의 삶에 치우치는 것은 개개인의 욕구에 치우쳐서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이러한 사태를 벌인 것이지, 이것은 정석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도 아니다. 
 
우리 생각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아담과 하와를 한 번에 안 만드시고,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하와를 뒤에 만드셨을까?’ 
그래 놓고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2:18) 
‘하나님께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한 것을 몰랐다는 말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심은 아담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외로움을 알게 하시고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먼저 자각하게 하신 후, 그에게 하와를 이끌어 오셔서 ‘우리’라는 개념을 심으시고자 준비시키신 과정이다.
‘나’ 하나의 개념에서 ‘우리’라는 개념으로 옮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할 일은 감사할 일이며 하나님의 바램을 실현시키는 것이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이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얼마냐에 따라 이 세상의 존폐가 결정이 난다.
 
사람이 늘어나고 지식이 더해 갈수록,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라는 개념이 희박해진다. 
설령 ‘우리’라는 개념이 주어져도 ‘우리’라는 개념이 창조주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그들에게 머물게 한다. 
다시 말하면 사탄에게 ‘우리’라는 개념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우리’라는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개념과는 판이하다. 
진정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올바른 개념의 삶을 도입시키고 신앙생활을 증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 
사탄은 우리가 분열되기를 바란다. 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 같은 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역과 맡겨진 구역을 감사로 가꾸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 삶을 바르게 영위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 처지를 아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실 일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신다.
 
우리 주위에는 무속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고, 그들도 하나님께서 내신 창조물이기에 사랑하신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일에 속아서 그랬을 뿐이지, 믿음의 사람들이 진정 바른 삶을 그들 앞에 먼저 제시했더라면 그들이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그러한 삶을 보여주지 못해서 그들이 그러한 오류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형제들이 그러한 오류에 빠져서 헤매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똑같이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허락하심을 기억한다면 그들에게도 똑같은 은혜가 주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이 같은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신 모든 창조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마음에 꼭 새겨서 ‘우리’라는 개념을 잊어버리지 않고 먼저 우리 곁에 있는 형제들에게 ‘우리’라는 개념을 바르게 심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가는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창2:18~끝) 하나님께서 우리네 사람에게 모든 만물을 맡기시고 삶을 허락하심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 내 고집, 내 아집, 내 욕구에 치우쳐서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그 바램을 스스로가 저버린다. 
이제는 이러한 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고자 할 때 모든 것을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우리네 사람은 우리의 바램과 욕구를 저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리의 욕구대로, 내 생각대로, 내 아집대로 문제를 풀어야 직성이 풀리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바램을 기억하려는 사람이 드물다. 
 
내 삶을 통해 내 주위 형제가 감사할 수 있고, 내 삶을 통해 내 주위 형제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진정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고 진정 살아있는 사람의 할 일이다. 
내가 좋은 것을 갖고 싶고 좋은 조건을 바라면 내 주위 형제도 좋은 조건과 좋은 것을 갖고 싶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바램과 욕구 또한 아름답게 정리하실 것이다. 
 
내 생각대로, 내 아집대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창6:1~2)라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에 치우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바램을 저버리고 우리의 생각대로 한다면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치우쳐서 자기의 욕구대로 삶을 사는 것과 같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나에게만 그 사실을 채우면 우리의 욕구가 채워질 줄 알지만,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다. 
사람의 욕구는 그 방향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사탄을 향하기에 끝내는 멸망의 길로 가고 만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에 대한 개념에서 ‘우리’라는 개념을 심기 위해서 아담을 먼저 창조하시고 외로움을 통해 ‘우리’라는 개념을 준비시킨 과정에서 하와를 허락하시고 ‘우리’라는 개념을 통해 그의 삶을 이끌어 가신 것을 보았다. 
 
이제는 진정 올바른 삶에 우리의 삶을 안착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마음을 합치자. 
내 개인의 삶에 치우치기보다 ‘우리’라는 개념을 바로만 안착시키면 우리가 바라는 모든 바램과 욕구가 한가지로 감사와 기쁨으로 이어지게 될 줄 안다. 
한번 그 일에 마음과 생활을 담아보자.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바램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만큼 아름답게 꽃피워지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바램을 따라 ‘우리’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산증인이 되자. 
이제는 개개인의 삶에 치우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스스로가 저버리는 사람들이 되지 말자. 
 
답답한 것은 가정을 가진 분들이 자기 속으로 난 자식이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자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될 때 누구나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무리 자기 자식이 잘된다고 한들 그 주위가 강퍅하다면, 그 주위가 삭막하다면 잘되어봐야 거기까지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삶에 우리의 삶을 잘 부합시켜서 ‘잘했다’ 칭찬 들을 수 있는 우리 각자가 되게, 마음을 합하고 생활을 합해서 주위 모든 사람에게 좋은 귀감이 되자. 
 
하나님께서 늘 돌보아 주실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바램을 따라 삶을 살아드린다. 
말은 “하나님께서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삶을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못 믿겠습니다” 하는 것과 똑같다. 
진정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돌보아 주실 것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드린다. 
이제는 믿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드리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2000.10.29.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