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요11:1~4)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나름대로의 조건 가운데서 얻게 된 지혜를 통해 그 삶을 살아간다.
각 사람의 조건 가운데 어떤 일이 벌어져야 될지 각 사람 속에 내재된 영은 그 사실을 상세히 안다.
자신은 몰라도 자기 속에 내재된 영은 그 사실을 먼저 알고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창조주의 바램을 따라 삶을 살아드리고자 원한다.
하지만 영을 감싸고 있는 육의 조건이 그러한 사실을 제지하기도 하고 헷갈리게 해서 영의 삶이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길로 가지 못하게 만든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근원 된 영의 사실이 정상적인 길로 갈 수 있게,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신 뜻대로 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온전한 바램이지만, 그 길을 가고자 해도 육의 사실이 그 일을 제지하는 바람에 영이 그 길을 바로 가지 못하고 육이 저지른 조건대로 끌려가서 끝내는 우리 속에 내재시키신 그 영까지도 끌려가게 됨을 먼저 아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희생하신 조건으로 믿는 이들에게 육의 조건을 사하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어지는 모든 희노애락의 조건은 결국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순화시키기 위한,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범사이다.
그러기에 나를 깨닫게 하시고자 벌이신 조건에 감사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잠3:6) 하심도 결국은 나를 순화시키기 위한 사랑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다 먼저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영을 새롭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임을 안다면 함부로 내 방식대로 머리를 굴리거나 그 일을 이끌어 가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사람에게 주어진 질병도 결국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이다.
우리 몸에 질병이 주어졌거든 두려워하지 말자.
그 질병을 통해서 나 자신을 깨닫고 일깨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지 우리 삶의 종지부를 찍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질병을 통해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길이 더 분명해지고 내 삶을 결정짓는 전환점이 된다면 이 질병의 조건이 오히려 나를 살리는 아름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길로 우리의 삶을 치달아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부모가 자식을 키워갈 때 매질을 하는 것도 결국은 자식을 새롭게 다듬기 위한 부모의 바램 안에서 매질을 하는 줄 안다.
스승의 입장에서 제자를 훈계할 때도 새로이 다듬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주는 어려움인줄 안다.
그렇다면 그 일에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일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우리에게 사람의 너울을 씌우시고 우리 속에 내재시킨 영의 삶을 새롭게 다듬기 위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임을 안다면 순종함으로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런 사람에게 기회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고자 역사하신다.
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조건을 결정짓는 것까지는 좋다. 자기의 생각이니까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의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주위에 여파를 미친다.
내 개인의 조그마한 바램 때문에 주위를 어지럽히는 일이 생기지 않게 자기 자신을 가누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주신 만남은 그릇과 같다.
우리 각자를 그릇에 비유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전체가 하나의 큰 그릇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깨지거나 이가 빠지면 그 그릇은 쓸모가 없어진다.
다시 말하면 내 개인의 감정이나 조건을 주장하기보다도 먼저 이 그릇 자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우선이다.
‘나’ 한 사람의 벗어난 행동으로 우리의 그릇이 쓰임 받지 못하는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택하신 뜻대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참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를 택하신 그 뜻을 바르게만 안다면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앞을 가로막지 못한다.
나에게 맡겨진 재능과 지식,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그릇을 바르게 드러내고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삶이 되자.
“나는 이러한 능력이 있기에 이 자리를 맡겠소.” 자기의 삶을 스스로가 알아서 내가 이 일을 맡겠다고 자원해서 지켜나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런 사람에게 지혜와 능력과 조건을 더하셔서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게 하신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은 그의 삶을 마치기까지 세상의 어떠한 조건이나 질병도 그의 삶을 가로막지 못한다.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자.
(요11:1~4) 사나 죽으나 어떠한 삶에 도입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의 조건이 오히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고자 예비하신 사랑의 조건인 것을 바르게 깨닫는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데 쓰임 받는 아름다운 도구가 된다.
내게 주어진 어려움을 자기의 어려움으로 보면 그 어려움은 자기 자신을 좀먹는다.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된다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일생이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얼굴과 옷차림은 가꾸어도 발바닥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답게 가꾸어도 그 사람을 이끌고 가는 것은 발바닥이다.
비록 자기의 삶이 발바닥처럼 짓밟히고 아무 조건과 영광도 없을지라도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나아갈 때 모든 조건이 발바닥으로 인해 옮겨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발바닥의 자리를 예수님께 맡기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통해 이 사실을 믿고 따라가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영광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발바닥의 자리는 사람들이 볼 때는 비루하고 눈에 띄지도 않고 짓밟히는 자리일지라도 그 자리를 통해서 우리네 몸이 움직여가는 것이다.
발바닥을 떼버리면 사람은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같이 쓰실지라도, 그런 자리를 맡기실지라도 아멘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그를 통해 역사를 움직여 가신다.
이런 아름다운 사실이 우리의 삶에 바르게 안착되기를 바란다.
‘나’라는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한 구역을 맡았다면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내 삶이 되게 하소서. 이 삶을 이수하기까지 나의 삶을 연장하실 줄, 나의 삶을 이끄실 줄, 나와 함께 하실 줄 압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통해 자신을 일깨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에 쓰임 받는 우리의 삶이 되자.
(요11:1~4)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말씀을 하신 후 끝내는 무덤에서 나흘 된 썩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불러서 일으키시고 그의 삶을 일깨우셨다.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그의 삶을 통해 그 자리를 지킬 때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연유를 바르게 깨닫게 하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일깨우시는 사랑의 조건에 쓰임 받게 하신다.
빛과 같은 사람, 소금과 같은 사람으로서 ‘나’라는 한 사람을 통해 내 주위를 일깨우고 내 주위를 밝혀 우리가 해야 될 일을 바르게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삶이 되자.
‘나’라는 한 사람이 그 가지를 가려서 내 주위를 어둡게 만들고 내 주위를 가로 막아서 혼탁케 만들지 않아야 한다.
‘나’라는 한 사람을 통해 내 주위를 밝히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함께 하실 것이다.
부모라면 나를 통해 주어진 새 생명이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선봉장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서 먼 훗날 그가 나로 인해서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하는 사실을 보게 만드는 것이 정석이다.
나로 인해서 주어진 생명 자체가 자기의 길을 찾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책임은 그 부모에게 있다.
자기로 인해서 주어진 생명 자체가 자기의 삶을 통해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어그러진 길로 간다면 먼 훗날 그 사실을 자기 눈으로 확인했을 때는 자기 가슴을 쥐어뜯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사랑을 보이시고 믿는 자에게 구원의 삶을 허락하셨다.
자기 삶의 결단을 내리고 ‘평생 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삶을 살아드리리라’ 작정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접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으면 그 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귀신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림은 이러한 삶에서 이탈하지 않고 감사로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 모으시고, 새 힘과 조건을 더하시기 위해 불러 모으셨다.
내가 온 것이 아니요, 어떤 조건에 의해서 온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 가운데서 부르신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해야 될 일은 감사함으로 화답하는 것이 참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다.
(2010.01.24.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