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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58.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등록일 : 2026년 1월 21일
  • 조회수 : 196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며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3:31~14:15)

 

 

우리가 볼 때는 오늘 본 우리 주위의 모습들, 어제 본 우리 주위의 모습들 또 내일 보는 우리 주위의 모습들이 다 똑같다고 보지만 우리 주위에 둘러있는 모든 사실은 세월을 따라서 매시간 폐쇄되어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생각에는 내 주위 모든 일들이 그대로 있는 것 같고, 내 주위 형제들의 모습이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 사실들은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을 달리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된다.

 

우리의 무디어진 감각이나 감정으로 내 주위의 일들을 돌아봤을 때는 모든 것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세상의 모든 조건은 1초가 바쁘게 그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어제 내가 판단했던 내 주위 형제의 모습이 그대로 있고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내 주위 모든 일들은 매 순간 바쁘게 사랑 가운데서 변화되어 감을 기억해야 한다. 

 

변화되어 가는 그 모습을 우리가 인정하고 또 변화될 수 있게 사랑으로 보듬는 것이 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할 일이요, 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도리이다. 

이 일을 지켜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건들도 하나씩 고쳐나가신다.

 

우리를 향해서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임을 기억해야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내가 그를 사랑해야 돼? 내가 그를 보듬어야 돼? 내가 그를 용서해야 돼?” 이렇게 반문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를 용서하고, 나를 위해서 그를 보듬고 관용하는 것이 참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주위 사람들이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똑같이 생긴 쌍둥이일지라도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을 달리한다. 생각도 다르고, 하는 행동도 다르다. 

비록 한 부모 밑에서 한날한시에 똑같은 모습을 띠고 태어나도 그들이 자라는 모습이 완전히 다른 것을 먼 훗날이 지났을 때 보고 알고 깨닫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 가운데서 ‘나’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앞서서 내 주위 형제들도 자기의 모습을 띠게 만들어 주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영을 심으시고 생명을 허락하심을 인정하고 그 일을 협력하고 사랑으로써 보듬는 일에 동참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나’라는 존재를 나 스스로가 인정하려면 내 주위 조건들도 똑같이 인정해 줘야 ‘나’라는 존재가 인정된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싶으면서 내 주위 형제의 조건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근본적으로 내 주위 형제가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일단은 인정해 주고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셨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똑같이 생명을 허락하시고 삶을 허락하신 것을 인정하고 나아갔을 때 ‘나’라는 존재의 가치관을 나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신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조건에 부합된 내 삶이다. 

내가 예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예배가 되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서 ‘나’라는 존재 가치를 나 스스로가 인정하기 위해 내 주위 조건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자. 

내가 형제를 사랑할 때 나를 세상에 보내신 그 조건이 완전히 인정된다. 

 

우리를 불러 모으신 뜻대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뜻대로 쓰임 받는 일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이런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때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어떠한 조건으로 살아가든지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위치에 서게 하신다. 

 

먼 훗날 우리가 이 땅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임무를 우리에게 물으신다. 

물으실 때 내 개인의 일만 주장한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실 것이다. 

하지만 나의 존재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모든 조건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내 주위 형제를 사랑으로 보듬고 나아갈 때는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일에 쓰실 줄 안다. 

이런 아름다움이 각 개인과 전체의 생활에 바르게 안착하기를 바란다. 

 

개인으로 볼 때는 다 흩어져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전체를 하나로 보신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떨어지거나 일그러지면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전체를 한 사람으로 본다면 내가 있는 부분이 발이 될지, 손이 될지, 머리가 될지, 어느 부분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의 위치를 지키게 될 때 ‘잘했다’ 칭찬 듣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그러기에 ‘사랑하라’는 말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세상을 허락하시고 조건을 허락하셨다.

‘나’를 찾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까지 내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하셨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그 연유를 위해서 삶을 살아가게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우선이다. 

하게 되면 그 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과 조건을 주신다.

 

예배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허락하신 것이다. 

한순간의 예배에 내가 온 것이 다가 아니라 자신을 일깨우시기 위해 주신 조건이기에 근본적으로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허락하신 조건을 내가 보듬고 지키는 사람이 될 때 예배가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사랑으로써 보듬고, 사랑으로써 지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아름답게 보신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는 것도 좋고, 가정을 이루는 것도 참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가정을 통해 태어날 생명이 부모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삶으로 후대를 잘 키워서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될 때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그 연유를 후대들에게 바르게 인식시켜 주고 가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우리에게 맡겨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그 일을 돌아보고,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의 빚을 많이 지우자.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그 조건을 바르게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한 사람을 세상에 보내심은 언뜻 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부부간의 조건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의 부산물로 보지만 아브라함은 백 세에 이르러서야 아내 사라를 통해 이삭을 얻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신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조건들, 하나님께서 예비하시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자식을 늦게 주실 때는 좀 더 올바른 후대를 얻으라고 훈련시키는 과정이기에 “나를 승화시키기 위해 예비하신 조건으로 이끄심에 감사드리나이다” 하고 오히려 그 일을 감사함으로 화답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실 줄 안다. 

 

자식이 없다면 오히려 짐이 가벼우니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일찍 주시면 나를 먼저 아시고 내 조건을 먼저 아시고 진작에 내게 족쇄를 채우심에 항복하고 두 손 번쩍 들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또한 아름다운 조건으로 보듬으실 줄 안다. 

 

자식을 일찍 주심은 내 조건을 하나님께서 제지하기 위해서 일찍 주시고, 늦게 주심은 나를 승화시키기 위해 늦게 주심에 일찍 주시든, 늦게 주시든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라는 존재를 일깨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이기에 모든 조건에 감사함으로 화답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서 우리 각자의 모습을 달리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조건을 바르게 기억하는 아름다운 예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 모든 율법을 다 이루었다”(롬13:8) 하는 말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달리하심은 나를 위해서, 우리 전체를 위해서 예비하신 일이기에 그 조건을 인정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요13:31~14:15) 이 말씀은 쉬운 듯하면서도 우리의 먼 미래에 주어질 일까지 알게 하셨기에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말씀을 깨닫기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가정을 통해 이 사실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으셨다. 

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는 자신의 장래를 볼 수 없어도 부모는 그 아이를 사랑하기에 아이의 장래를 그려놓고 아이의 장래를 위해 준비시킨다. 

어떤 때는 매질로, 어떤 때는 사랑으로, 어떤 때는 보듬어서 그 아이가 부모가 그리는 미래의 세계로 가게 하기 위해서 다듬어간다.

 

또한 부모의 슬하에서 주어진 형제들의 조건을 통해서 그 자식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게 교육해 나간다. 

부모의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이 서로가 사랑 가운데서 부모의 바램대로 자기의 모습과 조건대로 자라서 먼 훗날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기들이 자리매김한 사랑의 조건을 통해 자기의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바램이다. 

비록 먼 훗날 우리의 미래관은 볼 수 없어도 부모를 통해서 그 사실을 그려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계관 자체도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눈이 뜨일 때 이 사실을 능가할 수 있는 조건을 주신다고 하셨다. 

어떻게? 우리가 내 주위를 보듬고 사랑할 때 그 사실을 넘어갈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는 자, 모든 율법을 다 이루었다” 하시며 모든 사실을 허락하시고 이끌어 가심에 감사로 화답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모든 조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삶에서 그 사실이 이루어지게 하실 줄 안다. 

 

참 믿음의 사람이 해야 될 일은 사랑으로써 보듬는 것이다. 

나를 위해 허락하신 세상의 모든 조건, 나를 위해 허락하신 내 주위 형제들의 조건, 내가 깨닫지 못할 때는 내 주위 모든 조건이 나를 괴롭히고 해롭게 하는 조건인 줄 알았지만, 깨닫게 되면 그러한 조건도 나를 바른 길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인 것을 알게 되고 그것까지도 아름다운 사실로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실 줄 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매사,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 설령 나를 괴롭히는 일까지도 나를 사랑의 길, 올바른 길로 이끄시기 위한 채찍으로 보는 것이 아름답다. 

우리가 새롭게 한 번에 싹 지음을 받으면 참 좋겠지만 한 부분씩 바뀌어 먼 훗날에는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길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되자. 

 

(2010.02.14.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