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12:3~5)
 
 
신앙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근본적으로 보면 사랑 가운데서 한 지체가 되어 가는 것이며 이것이 믿는 사람의 표본이다. 
한 지체가 되어간다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몸이라는 말인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예수 안에서 사랑 가운데 한 몸을 이루어 간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신앙생활을 한다’라는 말의 어원 자체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근본 자체가 한 지체를 이룬다는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도 똑같은 말이다. 
믿는 사람들이 진짜 한 지체를 이룬다는 각오로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가운데는 ‘한 지체’라는 말을 쉽게 쓸 수 있지만, 모습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한 지체를 이룬다는 것은 근본 된 사랑의 조건을 모르고는 ‘한 지체를 이룬다’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전체를 감싸지 못하고는 사랑한다는 말 자체, 신앙생활을 한다는 말 자체가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짐승도 한다. 
 
신앙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이 모습은 각자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예배를 드리고, 각자가 하나님을 만날 바에는 예배에 올 필요가 없다. 
자기 집에서 하고 일하면서 하지, 시간과 돈을 들여서 교회를 지을 필요도 없다. 
예배를 드린다는 근본 자체는 한 지체가 된다는 말이다. 
사랑 가운데 지체가 되기 위해서 예배의 자리에 모인 것이다.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을 뵐 때 모여서 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도, 그의 아버지 데라와 그의 동생 나홀과 하란도 하나님을 안 믿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아브람을 택하셔서 끝내는 아브라함을 만들기까지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계속해서 보여주셨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 온 것이라면 예배드리러 올 필요가 없다. 집에서 하면 되지.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 믿음의 그 사실을 실증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 모으신 것이다.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한 지체가 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 모으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지체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써 예배드리지 않을 바에는 모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손이라는 매개체가 있다. 
손에는 엄지, 검지, 중지 등 여러 손가락이 있다. 하는 일도 다 다르다. 
또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이 어느 부분이냐고 물으면 모두 항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항문은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이 배출만 잘하면 그 사람은 건강하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항문이 가장 더러운 부분이 아니라 얼마만큼 잘 간수하고 그 일을 위해서 얼마만큼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결판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위치를 바로 찾아서 내가 서야 될 위치를 지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또한 참사랑의 가치관을 깨닫지 못하고는 ‘한 지체가 된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믿는 사람 중에 지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예배드리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비록 우리가 각각의 몸이지만 하나인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느끼기 전에는 예배드려도 그 예배는 허사가 된다. 
 
진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라면 “비록 모습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 우리를 불러 모으셔서 한 지체로 지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실 일을 맡기시고자 불러 모으신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이것이 되지 않고는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가장 더럽다고 하는 항문이 될게요. 이 자리를 꼭 지킬게요.” 이런 순수함과 자신의 가치관을 찾지 못하고는 예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부 눈이 되고, 전부 귀가 되고자 하면 예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서 근본적으로 “우리를 불러 모으셔서 지체라는 명명하에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옵소서.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이 자리를 꼭 지키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없이는 올바른 예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사실로 나아가기 위해서 예배에 모인 것이다.
“지금 당장은 되지 않지만, 먼 훗날에는 나도 한 지체의 자리를 꼭 지키겠습니다. 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꼭 나타내겠습니다.” 이 사실을 이루기 위해 예배의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로 안다면 일생을 사는 동안 누구를 탓하기보다, 누구를 힐난하기보다 “내가 이 자리를 지킴으로써 맡기신 사랑의 조건을 꼭 간수하겠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이다. 
예배를 드릴 때는 “아버지 하나님, 한 몸의 지체라면 제가 서야 될 위치가 어디일까요? 제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지혜를 통해 제가 서야 될 위치를 찾아가겠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이것이 정석이며, 이 사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믿는 것이다. 
사는 날 동안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로써, 기쁨으로써 드리는 아름다운 예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롬12:3~5) 예배를 드려야 되는 주목적, 무엇 때문에 예배드려야 되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한 지체가 되어야 정석이다. 사실 우리는 한 지체이며 당연히 한 몸이다. 
 
근본 된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시기 질투가 일어나 끝내는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불러 모으신 그 뜻이 빗나가게 된다. 
이 사실을 바르게 지키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시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실이 우리의 삶을 돕게 된다. 
이런 믿음의 삶, 능력의 삶이 바르게 안착되기를 바란다. 
 
(2010.02.21.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