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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60.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 등록일 : 2026년 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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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

 

 

우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생활에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하지만 근본 된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이 걸린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조건에 의해서 나를 이끄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한 번에 딱 끝나면 참 좋은데, 죽음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군요.” 이렇게 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말 안타까우실 것이다. 

 

좋은 조건이 주어지는 것도 깨달은 사람에게는 감사가 되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좋은 조건이 주어지는 것이 오히려 화근이다. 

그러기에 내게 좋은 조건이 주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내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깨달을 바에는 하루 속히 깨닫고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 사실을 은혜로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공의의 하나님, 공평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은혜를 베푸신다. 

문제는 똑같이 은혜를 베푸시고, 똑같이 그 일을 정리하셔도 받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똑같은 말을 전해도 받는 것이 다르다.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고 말한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일을 내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에 머리가 사용되지 않을 뿐이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누구는 머리가 좋아서” 아니다.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는 아이 앞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다 놓으면 달라진다.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누구란 것을 모르는 것이다.

 

일평생 살면서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드러내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분명히 역사하신다. 

자기의 조건에 치우쳐서 주위 일들을 훼파시키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들어올 때는 열 가지가 들어와도 나갈 때는 열한 가지가 나간다. 

수고해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그 사실이 자기에게 남지 않는다. 그래서 항상 갈증을 느낀다.

 

예배는 “아버지, 저 왔어요.” 하고 엎드려 꾸벅 인사하면 그것이 예배다.

스무 살이 되도록 아빠에 대해서 잘 모르는 딸이라도 “아빠”하고 부르는 한마디면 끝난다. 

딸이 아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우리 아빠다.” 하면 끝난 것이다. 

“나를 내신 분,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뱉어내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면 될 것을 “우리 아버지 맞지요?”하고 확인하고 “우리 아버지 맞거든, 이렇게 해 주세요” 한다. 

근본적인 신앙 사상 자체가 발라져야 한다.

 

우리에게 부모를 허락하신 것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관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에게 ‘가정’이라는 틀을 지워주신 것은 그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먼저 아시고 고르고 골라서 그 자리에 두신 것이다. 

그 일을 본인 스스로가 내팽개치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빠, 나는 저게 참 좋아요” 하고 말하고 “네가 좋으면 가지고 가라” 하면 그걸로 끝난 것이다. 

“주시옵소서.” 하고 목청을 높일 것도 없다. 

자기가 하기 나름이고, 자기가 믿기 나름이다. 

전부 자기 것인데 많이 가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자기 먹을 만큼 먹고, 즐길 만큼 즐기고 놔두면 되는데 혹시나 누구에게 빼앗길까봐, 누가 가지고 갈까봐 안간힘을 쓴다. 

 

내 자의로 “내가 지금 어떻게 살 것이다.”하는 바램은 좋다. 

하지만 자기의 바램대로 해서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땅 위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전부 자기의 바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바램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바램이 더 크다. 

문제는 그게 안 돌아올까 싶어서 안간힘을 쓰고, 항상 그 일이 자기에게만 주어지기를 바래서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려고 해도 베풀었다가는 온 주위를 훼파시키니 제재하지 않을 수 없고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이왕 믿을 바에는 나로 인해서 내 주위 형제가 사랑을 깨닫게 만들어가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렇게 믿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거다. 도와주실 거다.”라는 확신이 온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도우시기를 원하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와서,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에 내가 내 주위의 모든 일을 포용하고 관용하고 나아가면 어차피 그 일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내게 온다. 

물은 항상 높은 데서부터 낮은 데로 흘러간다. 이와 똑같은 이치로 우리의 삶이 흘러간다. 

나로 인해서 내 주위의 일들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도우시지 않겠나? 

이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나타내신다. 

 

성경 말씀을 깨닫기 바라거든 밖으로 나가 내 주위 형제들을 만나 형제와 사랑을 이루면 성경 말씀은 자연히 깨닫게 된다. 

성경은 사람을 위해서 준 것이다. 

사람을 위해서 준 것이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면 모든 것이 저절로 깨닫게 된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 외에는 성경을 보기에 앞서 먼저 내 주위 형제들을 일으키고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면 성경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이런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한 가지 꼭 마음에 둬야 할 것은 비록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우리의 조건이 불완전하고 좋지 못해도 그런 일 때문에 마음을 흔들지 않아야 한다. 

절대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실 일을 마음에 꼭 새기고,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와서 꼭 해야 될 일이 있음을 알고 나를 세상에 보내심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더하신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움직여 가신다. 

 

나를 위해서 주신 조건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 조건을 허락하신다.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나는 이렇게 살기 원합니다.” 하면 끝나는 것이다. 

자기의 복을 자기가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

 

(요3:16) 성경 전체를 한 마디로 줄이면 이 말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사랑을 입은 사람이라면 이 사랑을 지키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우리에게 반문하신 것이다. 

이런 사람으로 자라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세상을 허락하시고, 세상을 움직이시고,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 

“나로 인해서 세상을 이끌어 가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를 향해서 소금이라, 빛이라 하신 그 뜻대로 쓰임 받는 나와 우리가 되게 하소서.” 

이 말씀을 앞세우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먼저 자신을 일깨우고 깨닫게 하는데 마음을 쓰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 같은 사람으로 변모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고자 지혜와 능력, 조건을 더하신다. 

그러기에 내게 어떤 조건이 주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어떠한 조건이 내게 주어지게 우리의 삶을 정비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기본적인 사실 하나, 사람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것은 귀신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그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할지라도 일단은 그의 생명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의 생명이 조성된 과정 자체, 그 주위 자체가 그를 악하게 만들었을 뿐이지 그 사람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일에 휘말리지 않는 우리가 되자. 

 

(2010.02.28.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