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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62.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 등록일 : 2026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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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막9:33~37)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과 떠오르는 생각이 “오늘 하루를 맡기심 감사합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생활이 되면 참 좋겠지만, 아니라면 적어도 “이 하루를 통해서 과연 내가 감사할 수 있을까?” 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그런데 자기에게 주어진 그 하루를 통해 근심 걱정부터 하게 되면 하루를 살아가기가 참 힘들어진다. 

 

학생이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할 일을 생각한다면 참 재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사실에 마음을 둔다면 학교 가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만남과 새로운 사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아이라면 매사에 활기차게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이 어떻게 하면 감사함으로 활기차게 하루를 살아갈까?’ 하는 바램을 가진다. 

내 주위 형제들이 나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돕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이다.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가고자 한다면 내 주위 사람들이 하루를 감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위치에 서야 한다. 

내가 잘되고자 하는 것도 좋지만 내 주위를 감사하게 하는 데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기억하시고 지혜와 능력을 더하실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하나님께서 참 사람의 가치관을 찾기까지 우리를 키우시고자 오늘도 하루를 허락하시고 세상을 맡기셨다.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허락하시고자 하루를 맡기신 그 사실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다. 

성경 66권을 다 외운다고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한 구절을 봐도 자기를 위해 주어진 세상이라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깨달은 사람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하루가 나를 위해 주신 조건이라는 것을 알고 그 일을 보듬고 사랑하면 그의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이 일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까지 우리에게 은혜를 입히신 것이다. 

그러기에 나로 인해 내 주위가 사랑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오늘도 하루를 맡기심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로 인해서 내 주위 형제들이 사랑을 깨달아서 진정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까요?” 하고 이 일에 쓰임 받고자 안간힘을 쓴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주위를 돕는 위치에 선다면 세상을 통해 고생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해내게 하신다. 

자기 혼자서 하겠다고 안간힘을 쓴다면 없는 고생을 하게 되고,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게 된다. 

얼마든지 감사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도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감사함으로 받고, 감사함으로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나로 인해 내 주위 형제들이 힘들게 되고 결국 나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하루를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라는 말은 “하루를 맡기심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나로 인해서 내 주위 형제들이 감사하게 만드는 위치에 서게 될 때 진정한 감사가 된다.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입히신다. 

내 주위를 감사하게 만들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하면 결국은 마음이 강퍅해지고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내 마음이 풍요롭고 감사가 되려면 내 주위 형제들이 나로 인해서 사랑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볼 수 있는 조건을 계속해서 허락하셔도 우리가 그 사실에 감사치 못하고 내 아집에 빠져서 오히려 주위를 더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루해가 뜰 때 “나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형제들을 허락하심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이 나와야 참 믿는 사람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내 주위 형제들에게 증거 하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공부’를 통해서 나 자신이 누구보다 앞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통해 이 빠진 그릇이 되지 않게, 나를 통해 어떤 조건을 완성시키는 일에 쓰임 받는 내가 되게 하소서.” 이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라는 존재가 들어가서 하나가 되고 전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 쓰임 받는 내게 되게 하소서.” 이것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완성된 나를 찾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니 세상이 어려워지고 자기의 삶이 피폐해진다.

“나를 통해 세상을 완성시켜 나가고, 내 주위 형제를 건사하는 일에 쓰임 받는 내가 되게 하소서.” 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세상을 움직여 가신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있어야 될 자리를 바로 찾게 하소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이것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 내가 있을 자리를 찾기 위해서 공부하고 세상 지식을 익히는 것이 정석이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사랑을 보이신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조건 뿐 아니라 참 사람의 조건으로 이끌어 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바라보면서 “나를 위해 보이신 그 사랑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하게 될 때 이것이 예배다. 

“그 사랑을 믿고 지키고 따라가고자 합니다. 나를 도우소서.” 이 사실을 아뢰는 것이 예배다. 

예배의 자리에 온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온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온 사람이라면 내 주위 형제들을 지키고 보듬는 것이 진정 깨달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우리 자신을 비춰본다. 

내가 하루 일과에 맞는 옷차림을 했는지, 하루 일과에 맞는 조건을 준비했는지 자신을 점검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매사를 먼저 알고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 갖추어야 되는 조건을 알고 가는 사람이라면 내 개인의 조건을 하는 것뿐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을 건사시켜 나가는 것이 앞선 사람, 지혜로운 사람의 할 일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 앞섰다는 것은 그러한 일의 조건을 먼저 알고 그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누가 크냐?’ 하는 것은 얼마만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보듬느냐에 달려있다.

얼마만큼 내게 주어진 영역을 감사함으로 보듬고 있느냐이다. 

아무리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어도 자기만 보는 사람은 해봐야 거기서 끝이다. 

자기는 비록 큰일을 하지 못해도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큰일을 이루어낼 때 하나님께서는 돕는 그를 크다고 보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9:37) 

‘어린아이’라는 말은 어린아이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생성 조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믿는 것은 부모 밖에 없다. 그 조건을 이야기한 것이다. 

어린아이가 어른들보다 흠이 없고 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린아이의 그릇에는 무엇이 담길지 아직 모른다. 

어린아이의 마음과 생활에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게 돕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 하나의 조건을 통해 내 주위를 지키고 가꾸는 일에 쓰임 받는다면, ‘나’ 하나의 존재를 통해서 사랑을 깨닫게 하는 일에, 창조주 하나님의 바램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않고는 못 배기실 것이다. 

 

일생을 사는 동안 내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의 말을 듣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한다. 

그 순간에는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넘겨도 그 후에 문제가 벌어진다. 

문제가 벌어지고 난 뒤에는 회복할 길이 없다. 

그런 일을 만들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2010.03.14.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