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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63. 바램과 기도에 준한 삶을 살자

  • 등록일 : 2026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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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8:5~12)

 

 

“내가 바라는 이 바램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모든 것을 할 거야” 이 말 뒤에는 “내가 바라는 이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거야” 라는 사탄의 궤계가 내재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게 이것이 주어진다면 나는 진짜 바르게 살 거다. 보람되게 살 거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거다.” 이 말 속에는 “이 사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거다.” 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사탄은 항상 그러한 일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리 뒤를 따라다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 자신은 긍정적으로 나아가고자 해서 다짐한 것이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사실이 따라다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방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좌절에 빠지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일을 벌이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이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다 포기하게 할 것 같지만, 좌절하고 재기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를 일깨우는 사랑의 방편임을 알게 된다. 

욥의 일대기를 봐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할 것 같았지만 끝내는 자기가 받았던 축복보다 갑절의 축복을 더 받았다. 

 

욥의 시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똑같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모든 것이 좌절될 것 같지만 다시금 재기해서 새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재기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만드는 것은 사탄의 장난이다. 

우리가 믿음의 대열에 들어섰다면 이런 사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신 것은 우리를 이러한 사람으로 키우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딱 맞는 구역을 정하시고 그 구역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나’라는 존재가 그 부모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를 찾기 힘들 것을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그 부모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내 현재 어려운 처지를 한탄할 것도 없고 어려운 처지로 인해 좌절할 것도 없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우리 앞에 대로가 열려짐을 알게 하신다. 

내 앞에 놓인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어떻게 훼파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판난다. 

세상에서는 “인생의 쓴맛을 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2~43)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강하다 싶지만 에스겔서의 말씀은 이보다 더 강하다.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겔3:16~21)

 

우리가 모를 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심판하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하나님을 잘못 믿을 때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뜻을 바르게 전하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가정주부가 밖에 나가서 “예수 믿으면 복 받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고 전하지만, 속으로는 ‘그 집 아이들이 내 아이들보다는 조금 못하게 하시고, 저 집안이 잘 되어도 우리 집안보다는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근본적으로는 이 사실이 베일에 깔려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탄은 항상 이렇게 우리에게 접근한다. 그래서 끝내는 무너뜨린다. 

 

그러기에 가정을 지키는 주부는 사랑을 전해도 그 도를 넘지 않고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하게 해주고 자기는 물러서야 한다. 

지켜보고 있으면 자기보다 나으면 그만 열을 받는다. 

나보다 올라가면 끄집어 내리게 되고, 잘 되면 오히려 훼파시키는 자리에 서게 된다.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관문에 도입하고 나면 한발 뒤로 물러서서 돕는 위치에 서는 것이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셔도 사탄이 시샘하게 만들어서 결국은 두 사람을 이간질시킨다. 이런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시기와 질투는 모든 죄의 온상이다. 

그러기에 ‘나’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는 데까지 도달하면 빨리 뒤로 물러서서 다음의 일은 그 사람이 책임지게 만들고 나는 다음의 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자리에 머물러 서서 비교하다보면 그 사람의 일을 내가 올리고 구원 받게 해놓고 나중에는 내가 끄집어 내려서 둘 다 망하게 된다. 

 

(막9:42~4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자’는 그 당시에는 사람을 세는 숫자에도 넣지 않았다. 

‘연자맷돌’이라는 말은 소가 끄는 맷돌로 매우 크고 무겁다. 이런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해도 사람들은 그 말을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다. 

사는 날 동안 ‘나’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길로 인도하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신다. 

 

물질의 축복을 받고 싶으면 물질을 통해 내가 할 일을 준비하면 물질은 들어오게 되어 있다. 

물질이 내게 주어지려면 물질이 주어지게 행동해야 한다. 

물질을 주관할 수 있는 내가 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물질을 맡기신다. 

그런데 내가 그 일에 들어서지 않으면서 “주세요” 하게 되면 “뭘 할 건데?” 하고 물으신다. 

물으시는 데도 “그냥 주세요.” 한다. 

그에게 물질을 주면 오히려 사고를 치기에 물질을 주실 수가 없는 것이다. 

설령 그에게 물질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그가 돈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돈이 나갈 때는 소리를 치며 나가게 된다. 

그러기에 물질을 구사하기에 앞서서 물질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공부도 마찬가지다. “잘하게 도와주세요” 한다. “공부해서 뭘 할 건데?” 하고 물으신다. 그 물음에도 “그냥 잘하게 도와주세요” 한다. 

 

이런 사실을 알면 물질을 구사해도, 공부를 해도, 내가 어떤 일을 성사시키고자 해도 그 일을 하기에 앞서 “내게 이 사실이 주어진다면 내가 어떻게 살겠다”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은혜를 입고자 하면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위치에 가야 한다.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조건을 허락받아야 은혜를 입을 수 있다. 

너무나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을 내 마음과 생활, 조건에 담게 될 때 그 일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준비하지 않고는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다. 

설령 주어진다고 해도 그 일은 하루아침에 엎어진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다. 어떻게 되기를 원한다” 하거든 그에 준한 삶을 살자.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분명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만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는 날 동안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심을 알게 하신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다” 이 말은 내가 태어나고 죽을 날까지 우리의 일평생 모든 일을 다 아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에 우리가 믿고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길이 열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에 쓰임 받게 하소서”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은 당연하고 내가 입술을 열어 기도할 때 그 사람이 기회를 얻게 된다. 

내가 그를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셔야 한다. 

지혜로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내가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를 통해 역사하신다. 

내게 어떤 사실이 주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이 사실이 주어진다면 내가 이렇게 살겠습니다.” 조건을 먼저 내세우고 그에 준한 삶을 살자. 

이루어지기를 바래서 계속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기도한 것은 이루어진 줄 믿고 행동하라 하셨다. 

그렇지 않기에 우리의 삶에서 그 일이 항상 먼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마8:5~12) 백부장의 신앙관이다. 그 사실이 내게 이루어진 줄 믿고, 그 사실을 내게 이끌어 오신 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셨기에 그 일에 간섭하실 것을 알고 백부장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 앞에 이끌어 오신 것을 알았으면 그대로 따르면 될 텐데 그것을 자기가 제해버리기에 하나님께서 도우실 수 없는 것이다. 

 

나를 세상에 내시고 내게 그런 조건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알고 나가야 하는데 그 일은 보지 않고 무조건 달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실 때에 그에 준한 답을 해야 하는데 그에 준한 답을 하지 못한다.

 

믿음의 삶에서 증거를 본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일에 확신을 갖게 하신다.

확신 후에 그 일이 다가올 것을 자기가 먼저 안다. 백부장도 자기가 먼저 안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바르게 안착되기를 바란다. 

 

(2010.03.21.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