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10)
 
 
가정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것은 새싹으로 태어난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웃음꽃을 피운다. 
겨우내 추위로 죽은 것만 같은 나무에서 봄 새싹이 돋아날 때 우리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조건 가운데서 새롭게 깨닫는 한 심령을 통해서 먼저 자란 모두에게 감사와 기쁨이 되는 것이다. 
 
만일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자기가 다 아는 양 아빠 엄마의 일을 지적하고 감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누구도 아이의 모습을 통해 기뻐하거나 화기애애한 가정의 모습을 가지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잘못되는 것은 내 주위의 조건에 군림하려고 하는 바람에 주위에 감사와 기쁨을 빼앗고 자신의 조건이 경직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나’라는 존재를 통해 내 주위가 감사하게 기쁨으로 자신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믿는 사람, 진짜 깨달은 사람의 할 일이다.
‘나’라는 존재를 통해 내 주위가 자기의 삶을 되찾게 만드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 깨달은 사람, 앞선 사람의 할 일이다. 
 
깨닫지 못하면서 깨닫는 양하는 사람에게 성경은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전2:26) 이렇게 명시한다. 
사람이 많이 배우면 배운 만큼, 많이 가지면 가진 만큼 “저 사람은 당연히 많이 가져야 해.” 이런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 진짜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내가 물질을 갖고 싶으면 “저 사람에게 돈이 가야 돼.” 이 말이 나와야 그 사람에게 돈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이 나오게 자신을 가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때 물질이 그 사람에게 흘러간다.
 
그럼, 어떤 사람에게서 돈이 나갈까? 
돈이 주어지고 난 뒤 “이 돈은 어차피 나갈 돈인데.” 
다시 말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에게 그 돈이 머물지 못한다. 
돈이 바르게 쓰이고 돈이 그의 손에 머무는 사람의 돈을 살펴보면 그에게 있는 돈은 가지런하다. 
돈이 비록 생명은 없지만 자기 손에 들어간 조건은 전부 감사하며 마음을 담아 전하려고 돈을 가지런하게 놓은 손길을 보면 “이 사람은 돈이 있어야 되겠구나. 이 사람은 돈이 머물겠구나.”하고 알게 된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자기가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머물지 못한다. 
 
신앙생활은 기본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자기가 가늠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예를 들면,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의 격에 맞게 자기의 옷차림을 한다. 
조금 격이 있고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일과에서 어떤 사람이 올 것을 미리 알게 되면 그 수준에 맞게 자기의 차림새를 한다. 
 
잘 되고 싶으면 잘 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 
복을 받고 싶으면 복 받는 행동을 해야 한다. 
건강하고 싶으면 건강한 행동을 해야 한다. 
자기의 삶에서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해놓고 난 뒤에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성경에 있는 말씀은 전부 “네가 잘되기를 바라거든 이렇게 살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아니다. 나를 위해서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믿는 것이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 ‘어린아이’란 “나를 내신 분이 있다, 나를 관장하는 분이 있다, 나를 도우시는 분이 있다”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나를 키우시는 분, 나를 도우시는 분이 나를 지켜보고, 나를 통해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어린아이다. 
 
사는 날 동안 잘 되고 싶으면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조건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누릴 자격이 없다. 
깨달은 사람, 앞선 사람은 누릴 자력이 없는 그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에, 그가 자기 삶의 가치관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그래서 ‘사랑을 증거한다’라고 해서 ‘선교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돈을 좇으면 돈이 도망간다.”라는 말이 있다. 
성경은 “그러한 일에 마음을 쓰지 말고 너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를 찾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시대에 꼭 맞는 사람으로 너를 보냈기에 현재 있는 네 자리에서 감사하는 사람, 창조주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면 네 길을 책임지신다”라고 하신다. 
 
자신을 바로 찾아 ‘나’라는 존재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는지, 무엇 때문에 이 시대에 나를 보냈는지, 무엇 때문에 이 조건에서 삶을 살게 하셨는지 그 일을 돌아보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우리 자신을 바로 찾아서 “이 시대에 꼭 맞는 조건에, 꼭 맞는 나를 보내시고 이 사실을 통해 나를 감사케 하시고 창조주를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일에 쓰임 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고,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임무를 맡기시고, 나를 통해 역사하실 그 일이 내 눈에 보이고 감사할 수 있는 길로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나를 보내셨기에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그 사실을 융화시키지 못하면 ‘나’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다. 
 
‘사랑’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잘나고 못나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났으면, 내가 알았으면 알게 모르게 그것을 갖다 놓고 활용할 수 있게,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깨달은 사람의 할 일이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와 기쁨을 돌리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라는 존재를 꼭 필요해서 세상에 보내셨다면 이 시대에 꼭 맞는 사람, 나로 인해 주위가 감사로 이어지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내가 안간힘을 써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마라. 
“이 시대에 꼭 맞는 나로서 자리매김하려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 자신을 돌아보고 내 위치를 찾아가고자 하면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신다. 
내가 안간힘을 쓰기보다, 내가 윗자리에 군림하려 하기보다 ‘나’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게 내 주위를 만들어가자. 
 
집을 짓다 보면 ‘끼움새’를 사용한다. 
‘끼움새’는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불쏘시개밖에 안 된다. 
하지만 끼움새가 들어가서 각각의 부재가 삐거덕거리지 않고 연합이 되어 집을 이룬다. 
“내가 꼭 뭐가 되어야지.” 하기보다도 ‘나’라는 존재를 통해 내 주위를 결속시키는 일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예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다. 
이 같은 참 믿음의 삶에 자신을 드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쓰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다. 
 
(2010.04.11.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