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회소식
아회찬양선교재단의 다양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12:22~34)
 
 
부모는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지 고생하면서 어려운 지경에 놓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설령 망나니 같은 부모라도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지 못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감사를 더하시고 기쁨을 더하시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바램이다. 
그러기에 사는 날 동안 감사하게 살지 못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사람 된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해 우주 만물을 허락하시고 그 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찾아갈 수 있게 지금도 길을 예비하심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요, 깨달은 사람의 할 일이다. 
 
TV 뉴스를 통해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을 볼 때 타인의 일임에도 마음이 아픈데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른길로 가야 될 우리가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어려움에 놓일 때 안타까워하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한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허락된 어려움과 괴로움, 답답함은 우리 자신을 찾아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이다. 
자식이 건강하고 자기의 삶에서 감사할 수 있을 때는 지켜보는 부모의 얼굴에 화색이 돌지만, 자식이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볼 때 부모의 마음은 미어진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람답게 이끄시고자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셨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그 뜻대로 참 생명이 주어지게 하시려고 지금도 기다리심을 돌아보는 사람이 될 때 우리의 길을 지키시고 예비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의 삶에 치우쳐서 그 사실을 돌아보지 못한다. 객관적인 사실로 지켜보면 알 수 있는데 주관적인 사실이 되면 그것을 잊어버린다. 
 
사람이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면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어진다. 
하지만 물속에서 벗어나 숨을 쉬고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생각하면 몇 초 사이에 사람의 마음이 다시 변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어려움이 그를 깨닫게 하는 하나의 모티브는 되지만 그 일을 통해서 완전히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창조주를 돌아보는 마음가짐이 된다면 참 좋겠지만 거기까지 되기가 참 힘들다. 
 
한세상 사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어려움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을 것이다. 
우리를 새롭게 지으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배려로 어려움을 허락하실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려운 그 사실만 보지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허락하셨을까? 무엇 때문에 좋은 일을 허락하셨을까?’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나를 사랑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주신 조건을 돌아보지 않는다.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사랑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사랑을 보이신 그 사랑을 돌아보는 일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참 좋겠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자기에게 치우치면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곧바로 입술에서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온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고비를 빠져나갈까?” 하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내게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셨을까?”를 돌아 볼 겨를만 있으면 지혜가 주어질 텐데 그러한 사실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만 해도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에 당황하게 된다.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단 몇 초 만에도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데 우리의 삶에 이러한 사실이 몇 초가 아니라 며칠, 몇 달을 끌면 사람이 지쳐버린다. 
하지만 절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거기까지만 나를 끌고 가시지 더 이상의 어려움은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면 감사의 길로 이끌어 가실 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사람의 생명은 자신이 가누는 것도, 부모가 가누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심을 기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조건까지 주관하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작은 일에 당황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어려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나?” 하는 그 사실을 돌아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면 그 순간으로 우리의 삶이 바뀌어 간다. 
다시 말하면 짧은 몇 초에 내 삶의 방향을 바꿀 때 하나님께서 기다리셨다는 듯이 우리와 합해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기도의 응답은 항상 한순간에 온다. 
기도하고 난 뒤에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믿지 못해도 그 응답은 내게 다가온다. 
그 일이 내게 다가왔을 때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면 그 일은 지나가 버린다. 내가 취하지 못하면 그 조건이 날아간다. 
우리를 위해 응답하신 조건이 내 앞을 스쳐 가고 스스로가 그 일을 내팽개칠 때 그 일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참 답답하실 것이다. 
 
예를 들면,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버스를 놓치면 약속 시간에 갈 수 없다. 
한순간 한눈을 팔다가 고개를 돌렸더니 버스가 벌써 도착해서 출발하려고 한다. 
1~2초만 늦었어도 버스는 떠나고 약속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응답은 항상 이렇게 다가온다. 
그러기에 기도했거든 그 사실을 내게 주실 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기도한 뒤에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 사실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 사실을 지켜보지 못하기에 내게 응답하시고 조건을 허락하셔도, 허락하신 조건이 내게 다가왔어도 내 것인 것을 모르고 결국은 스스로가 흘려버린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은혜 베푸실 때 그 사실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바램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우리의 삶에 도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눅12:22~34) 급박한 세대에 삶을 의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씀이 꼭 필요한 줄 아시고 허락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고 어느 가정보다 윤택하게 살고 싶은 것이 당연한 바램이다. 
이런 바램을 가지고 삶을 살아갈 때 근본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길이 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나만의 편안함을 추구하고 내 주위의 일을 돌아보지 못하기에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구사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면 되는데 그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려움이 자기에게 닥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말씀의 근본 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허락하셨는데 우리 스스로가 감사함으로 그 일을 지키지 못하고 보듬지 못한 바람에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빈곤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마실 물도 구하지 못해 오염된 물을 그대로 마신다.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하셨는데도 자기의 삶에 치우쳐서 주신 조건을 지키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은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하게 된 사실을 볼 때 안타깝다.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 모든 민족을 다 창조하셨다. 
잘 사는 지역의 사람들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빈곤한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창조하셨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넓게는 세계지만 작게는 한 나라와 한 지역 안에서 자기의 삶을 바르게 가누어 가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그들이 자기의 삶을 가누어 갈 수 있게 사랑으로써 도울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사랑으로 돕는다고 해서 내 것을 그냥 퍼주는 것보다 그가 자립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이 같은 사랑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그 조건을 돌아보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생활의 모든 조건까지 더하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준비한다면 대책 없이 일을 벌이기보다 그에 준한 준비를 충분히 한 후에 하는 것이 아름답다. 
일을 해도 그 일의 진부와 진행을 바로 알고 해야 한다. 함부로 한다면 돕지 않음만 못하다. 
도움을 줘도 그 사실이 감사와 사랑으로 이어져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은혜를 허락하신 사실을 바라보는 데까지 가지 못한다면 돕지 않음만 못하다. 
 
자식을 키워도 그렇다.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 깨닫지 못할 때는 오히려 제재하는 것이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없을 때 이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나 혼자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음의 일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사랑이다. 
 
형제간에 사랑을 나누어도 그가 자립할 수 있게, 자기의 삶을 스스로가 키워갈 수 있게 먼저 그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그냥 퍼주게 되면 그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무턱대고 하고 난 뒤에 끝에 가서는 “전에는 주더니 왜 안 주냐?” 하고 그 일에 감사치 못하는 어리석은 일을 만들게 된다.
 
‘나’라는 한 존재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일구어내기 위해 오늘도 그러한 사실을 보게 하시고, 동참하게 하시고, 그 일에 쓰임 받게 된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에 함께 하실 수 있도록 협력하고,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모든 일이 아름답게 이어진다. 
 
“‘나’라는 한 존재를 통해, 내 도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간섭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게 하는 자리까지 가게 도와주세요. 내 형제에게도 이 같은 일이 주어져서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 조건을 더하셔서 어려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허락하실 것이다. 
우리가 협력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간섭하심을 드러낼 수 있게 쓰임 받는 각자가 된다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살아계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어려운 일을 뻔히 보고도 그 일을 넘긴다면 그것은 더 나쁘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고 그 일을 세밀히 볼 수 있는 안목이 뜨이기 위해 사랑으로써 그 일을 지켜본다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더하셔서 그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신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고 하셨다. 내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 
우리가 사랑으로 보듬고 지킨다면 이 같은 일이 벌어짐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내 개인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물론 맡겨진 주위 조건들을 감사함으로 이끄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주일날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날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주일이 된다면 일주일을 감사함으로 가꾸는 새 힘을 얻게 된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우리의 생활에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주일로 가꾸지 못하면 말씀의 싹이 틀 수 없다.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준비하는 각자가 된다면 작은 사랑의 씨앗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주어지게 서로를 보듬어서 사랑의 씨앗을 싹틔우는 아름다운 주일로 만들어가자. 
 
(2010.04.18.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