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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71.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등록일 : 2026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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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1: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3:1~3)


우리네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은 그것이 사실인 양 또 사실이 아닌 양 구분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상에 내시고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는 말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 시종(始終) 자체를 보시고, 모든 사실이 이루어질 것을 아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의 삶을 통해 이루실 그 일의 처음과 나중,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그의 구속사를 통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길로 그 삶을 이어갈 것을 다 아시고 계획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을 세상에 내시고 한순간의 사실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단정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광야와 같은 삶을 지나, 마지막에는 세상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다 보신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이 사실을 찾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의 피로 우리를 구속해서 참 사람 된 본질을 이끌어 내신 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하나로 보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셔서 그가 사람 된 본분을 통해 사랑 가운데서 자라서, 언젠가는 자기의 본질대로, 자유의지대로 자기의 삶을 꾸리고 정비해 가게 하셨다.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를 구속해서 참 사람 된 모습으로 이끌어 내신 후 하신 말씀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신 것이다. 
죄악 된 세상 가운데서 헤매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까지 사랑을 보이시고, 그를 믿고 따를 때 우리의 모든 사실을 회복시키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그 사실을 이루어내시기까지 멈추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한 마디로 줄인 것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이다. 

우리네 사람이 사람 된 본분을 찾아 창조하신 근본대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으로 매듭을 지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계21:6) 하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떠한 사실에서 내 삶이 시작되었든지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끝에 가서도 마음먹었던 그대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할 일이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 사람을 위해서 지으신 모든 것을 열거해 놓았다. 
우리의 부모와 선조들도 자기 삶의 모든 것, 자기가 수고한 대가의 모든 것을 후대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난다.
그것도 아낌없이, 숨김없이 다 물려주고 떠난다.

자식을 낳아서 키울 때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만 걸지 않아도 아이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자식에게 기대를 걸면 거는 만큼 그 자식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참 부모 된 이들의 할 일이요, 참 선조 된 이들의 할 일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세상에 내시고 그에게 딱 하나의 바램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다. 
“기본적인 사실만 지켜라.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조건을 다 차지해도 좋다.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2:17)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너를 위해 주어진 그 사실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부모님도 이같이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한 나라에서도 국민이 자기의 삶을 꾸려갈 수 있게 나라의 수장 된 사람이 법으로 그 일을 정리해서, 그 나라의 국민이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수장으로서 그 일을 지켜나간다. 이것을 국법이라고 한다. 
한 나라에서도 이렇게 하는데, 가정에서 그 책임을 자식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너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줘야 한다.” “너는 우리 가문의 딸로서, 아들로서의 자리를 지켜줘야 한다.” 이 외에는 부모가 더 이상 바라지 않아야 한다. 

부모는 자식이 그 자리를 바르게 지켜나갈 수 있게 기대를 걸기보다는 “내가 너를 지키마. 하나님께서 너를 내신 뜻대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이로 자라가거라.”하고 지켜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중간 매개체로서 부모가 있을 뿐이지, 부모를 통해서 그 자식이 주어졌을 뿐이지 부모가 자식을 만든 것이 아니다. 
내 속으로 낳았기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의 생명을 이어왔기에 부모의 할 일은 그 일을 지켜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맡기기에 앞서 그 자식의 일평생의 길을 먼저 계획하시고 세상에 내신다. 
태어날 자식의 생명의 마지막까지 먼저 계산하시고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함부로 내 주위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내신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죄’라고 한다. 
“그가 미운 짓을 했기에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를 내신 창조주 하나님을 지적하는 것이 되기에 ‘죄’가 된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고 하셨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조건을 다 터득했다는 말이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면 아이에게 기대를 걸기보다 이 아이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참 부모의 할 일이다. 
아이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아이를 보내신 창조주 하나님께 기대를 걸어야 될 사람들이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에게 기대를 걸기에 아이가 잘못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일생에 걸어온 길, 걸어가야 될 길을 딱 맞게 짜서 우리 앞에 펼쳐 놓으신다. 
우리를 두말하지 않고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으로 이끄시기 위해 예비 된 사실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내신 뜻대로 쓰임 받는 길로 이끌어 가시기 위해 계산된 가운데서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우리의 삶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요, 참 깨달은 사람의 할 일이요. 앞선 사람의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상에 보내시자마자 일생의 모든 조건과 그에게 맡길 일을 준비하시고 눈앞에 조건들을 하나씩 드러내셔서 그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그러기에 자식을 사랑하거든 기대를 걸기보다 아이를 세상에 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지혜로운 부모와 선대가 되어야 한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 끝내는 그의 삶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시는 구속사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을 세상에 내실 때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다 계획하고 내신다. 
그러기에 아이를 키울 때는 비교 의식으로 키워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해 버리면 아이가 경쟁사회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바르게 쓰임 받는 아이가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이들은 “내가 가르치는 손길을 통해서 비록 이 아이에게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전하지 못해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전할 때 아이의 마음에 사랑의 마음이 생성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억하시고 아이가 그 일로 인해 이끌림을 받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일구어 내시기 위해, 나를 통해 어지럽히는 조건들을 제거시키시기 위해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이같이 바르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

나로 인해서 이루실 일에 있기에 ‘나’라는 한 사람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심에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나로 인해 주어졌다는 것은 나를 새롭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 자식을 통해 이루실 일이 있기에 나에게 맡기시고 그 일을 이루게 하심에 먼저 감사하고, 그 아이를 통해서 이루실 일을 돕는 일에 쓰임 받는 부모가 되고 선대가 되어야 한다. 
세상적인 기대보다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를 내신 뜻대로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 주는 것이 참 부모의 할 일이고, 선대의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대로 삶을 살아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우리를 내신 뜻대로 소임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조건이 감사의 길로 나아가게 이끌어 가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모두에게 머물기를 바란다. 

(2010.05.16.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