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우리가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옷이나 얼굴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짬을 모르는 어린아이나 노숙자들 외에는 그런 일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람의 됨됨이는 외모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얼마만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느냐에 따라서 판가름이 난다. 
사람은 각자마다 나름의 조건이 다 있다. 일하러 가는 사람이면 일터에 맞게 옷을 입고 수영하러 가는 사람이면 수영복을 입는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내 주위 일들을 인정하는 것이 아름답다. 
보석이 중요할까? 보석함이 중요할까? 보석이 중요하다. 
보석함에 맞춰서 보석을 깎아야 할까? 아니다. 보석을 위해서 보석함이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보석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까? 
우리가 온갖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를 보석같이 보셨기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문제는 자기 자신이 보석인 것을 모르는 것이다. 
예배는 모두가 응집해서 사랑 가운데 하나로 뭉쳐질 때 예배가 된다. 
설령 찬송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아도 마음을 모으는 그 자체가 예배이다. 
명절이 되어 어른을 찾아뵈었는데 사정이 있어서 세배를 못 드리게 되었다면 “그래, 알았다” 하고 이해하시며 세배를 드리고 안 드리고는 상관하지 않는다. 
후손들이 사랑을 기억하고 찾아온 것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 예수님!” 이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의 근본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셨다. 
누구를 사랑하사?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그러기에 자기 자신을 바로 알면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것은 부모가 아니다. 
부모가 내 생명을 주관할까? 아니다. 
부모가 내 생명을 주관한다면 자식이 죽지 말아야 하고, 아프지 말아야 하고, 잘못되지 말아야 한다. 
부모는 나를 세상에 있게 한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다. 
부모를 탓하기에 앞서 나를 이같이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나를 쓰시고자 이같이 이끄심에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기에 앞서 나를 이같이 훈련하심은 나를 쓰시고자 하심이기에 그 일을 세밀히 지켜보고 나를 다듬는 일에, 나를 세상에 있게 한 그분의 일에 마음을 쓰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나를 이같이 키우심은 나만이 해야 될 일이 있기에 나를 이같이 키우심에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이요, 깨달은 사람의 할 일이다. 
이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서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참사람 된 가치를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되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엡6: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첫 번째 룰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내가 있어야 될 자리, 내가 가야 할 자리를 먼저 아시고 부모를 통해서 나를 세상에 있게 하셨다. 
그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르게 깨달아서 사는 날 동안 부모를 정하시고 가문을 통해서 나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가야 될 길을 먼저 아시고 작정하신 뜻대로 살아가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자.
내 부모를 통해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일평생에 내가 해야 될 일을 먼저 아시고,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을 아시고, 나의 태어남과 죽음까지 딱 정해놓으시고 그 틀 안에서 나를 움직여 가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22:13)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내가 죽을 때까지,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내가 해야 될 일까지 다 아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일을 먼저 아시고, 모든 일어날 범사를 먼저 아시고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에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셨다.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이끌어 가실 것을 벌써 다 작정하시고 이끄신다. 
그 사실을 믿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 사실에 순종하는 참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세상에 보내심을 감사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찬양이다. 
기도는 영적 방해를 받을 수 있지만 찬양할 때는 방해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알아서 사는 날 동안 우리의 입술과 생활에서 찬양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한세상 살아가는 동안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해야 될 일을 먼저 아시고 모든 감각을 통해서 내가 세상에 온 조건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이루실 일이 있어서 세상에 보내셨기에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손톱도 ‘나’라는 존재의 한 부분이요, 발바닥도 ‘나’라는 존재의 일부분이다. 
아무리 머리가 명석하고 똑똑해도 발바닥을 주시지 않았다면 걸어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손톱 같지만, 이 손톱을 주지 않았다면 물건을 쥐거나 물건을 사용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내 위치가 어디인지, 내게 맡겨진 자리가 어디인지 “내게 맡기신 분야를 내가 어떻게 지켜 나갈까?”하고 자기 자신을 바르게 깨닫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지혜와 능력, 조건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르게 깨달아서 우리에게 맡겨진 귀한 세상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라는 존재를 이처럼 귀히 보시고 세상에 보내셨을 때는 나만이 해야 될 일이 있음에 먼저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치 있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통해서 주위 사람들이 얼마만큼 감사하느냐 다시 말하면 나를 통해서 그들이 얼마만큼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한 그분을 바라보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통해서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는 자체가 감사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돈을 벌거나 능력을 구사해도 그 능력의 구사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결판이 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매사를 바르게 가누어가는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되자.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 나를 이 자리에 불러 모으신 하나님, 이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바로 찾게 하옵시고 나를 세상에 내신 뜻대로 ‘나’라는 한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리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내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되게 하소서. 이 사실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선봉장이 되게 하소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정석이다. 
(2010.05.23.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