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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74.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등록일 : 2026년 3월 25일
  • 조회수 : 106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골1:13~23)


오늘도 귀한 하루를 허락하셔서 사람됨을 인식하게 하시고 사람됨을 바로 깨달아,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삶을 살 수 있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사람 된 근본을 사람의 조건으로는 알아갈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그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 수많은 사사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삶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신 사랑의 조건이 오늘도 우리에게 똑같이 임하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한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떠나는 것, 심지어 엄마의 뱃속에서 떠나는 아이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생명이 거두어지는 아이도 있고, 사람의 손에 의해 생명이 거두어지는 일도 있다. 
우리네 생각에는 생명이 끝나버리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명을 몸에 담았던 엄마와 그 사실을 담게 했던 아빠의 마음에는 일평생 그 사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생각나고, 좋으면 좋은 대로 더 생각난다. 

그렇다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같이 와서 험난한 세상 가운데 자기의 삶을 살아야 되는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그 사람만이 해야 될 일, 그 사람만이 가야 될 길을 미리 예비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돌아보고 깨닫는 사람이라면 진정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때 지혜와 능력이 주어지고, 자기만이 해야 될 일을 할 수 있게 키워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손에는 다섯 손가락이 있지만 손가락마다 기능이 다르다. 
사람마다 그 사람만이 해야 될 일이 있음을 먼저 아시고 그를 세상에 내신 것이다. 
어떤 생명은 엄마의 뱃속에서 떠나지만, 그를 통해 그 부모와 가정을 변화시켜 나가신다. 
비록 세상에 잠시 왔다가 떠난다 해도, 우리가 보기에는 별일이 아닌 것 같아도 어려울 때마다, 좋을 때마다 그 생명이 기억날 것이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 일이 기억날 것이다. 
먼 훗날 그 생명 하나로 인해 내가 해야 될 일을 찾아가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을 일깨우는 방편이 되기도 하고, 그 생명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의 흩어진 마음을 다시 모으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렇게 잠깐 왔다가 떠나는 생명도 이같이 간섭하시는 데 수십 년간 생명을 이어오고, 삶을 이어온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과 그를 있게 한 가정의 조건으로서는 그렇게 미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을 때든, 좋지 않을 때든 그 일이 기억나게 만들고 주변을 변화시켜 나가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을 본다. 
그러기에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동안 나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양상을 가볍게 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나로 인해 주어지는 조건을 감사로 화답할 수 있게 자기의 삶을 다독이고 일깨우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우선 먹고 사는 것에 지장이 없다고 안락에 치우치면 어느 순간엔가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 내가 이루어 놓았던 모든 사실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사람이 살아있는 자체는 “내가 할 일을 아직 못 마쳤구나, 할 일이 아직 남았구나, 그래서 내게 생명을 허락하시는구나.” 하고 감사해야 한다. 
오래 살려고 애쓰기보다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할 일을 내가 다 마쳤나?” 그 사실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그 일을 마무리할 때는 어떠한 조건이 앞에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죽음이 그 앞에 도래했어도 그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위로하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고자 하면 멀쩡해도 데려가신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살아있는 동안 삶의 가치관을 바르게 인식하고 “나에게 맡겨진 삶의 목표를 다 이루었나?” 그 사실을 돌아보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그 사실을 인식하고 바르게 이행했을 때는 죽음이 내 앞에 도래되어도 오히려 그 사실을 감사로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또한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과 행동을 한다.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져있다면 살아있는 동안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 될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람이 많다고 성공한 교회가 아니다. 
깨닫고 그 삶의 가치관을 바르게 인식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때 그 교회가 바로 선다.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가치관을 알려줄 수 있는 열린 입술과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의 삶이 되자.

죽음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고통이 따르지만, 막상 죽음이 도래하면 고통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마음의 안타까움도 없다. 
연세 든 어르신들이 “자는 잠에 세상을 떠나게 해주세요” 하고 바란다. 
살아있을 때는 후손이 중요하지만, 막상 죽음이 도래하면 보이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그러기에 살아있을 때 참사람의 가치관을 찾는데 게으르지 않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참사람의 가치관을 찾기 위해서, 사람의 일생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 모으신 사랑에 감사하자. 
그 가치관을 바르게 깨닫는다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그냥 매달리는 고통도 어려운데 “나는 도저히 부끄러워서 예수님과 같이 바로 매달리지 못하겠다.” 하며 스스로 거꾸로 매달리기를 자청했다. 
스데반 집사 또한 돌팔매를 맞아 죽으면서도 자기의 삶을 이끄시는 사랑에 감사함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나’라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시기에 나에게 삶을 허락하시고 나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자 만물을 예비하시고 주위 형제들과 조건을 허락하셔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하셨다. 
나만이 해야 될 그 일이 다가올 때까지 나 스스로가 자원해서 갈 수 있게 주위 형제들을 허락하심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에게 있을 앞일을 하나님께서 예견하시고 그때까지 그 일에 도입할 수 있게, 자원해서 이루게 하시기 위해 범사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신다. 
이것을 세상 말로 ‘팔자’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신다. 
그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그의 범사도 똑같이 간섭하신다. 
설령 그가 하나님을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간섭하신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살아있는 동안에 참사람의 가치관을 바로 찾아 나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를 바르게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그 어떠한 것이 우리 앞을 스쳐 가고 이끌어 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나만이 해야 될 일을 맡기시고, 어느 때에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일을 처리할지, 그러한 일을 사전에 예비하시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의 일을 함부로 판단하고, 각자의 조건으로 함부로 이끌어 간다면 스스로가 가슴 칠 날이 온다.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내가 해야 될 일의 결과를 찾으신다는 것을 안다면 자기의 삶을 함부로 살지 않아야 한다. 
그 삶에 발걸음을 옮기면 스스로가 느끼게 된다. 
“뭔가 모르게 내가 할 일을 했구나. 뭔가 모르게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고 있구나. 뭔가 모르게 내가 깨달아야 될 것을 깨닫고 있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어려움을 허락하시는구나 감사드립니다.”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이 열린다.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 어려운 일을 허락하심에 감사하고, 어려움을 닥치게 하실 때 오히려 감사하는 입술이 열린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마음껏 쓰임 받다가 우리의 삶을 마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아직은 내가 해야 될 일이 있기에, 마지막으로 정리할 일에까지 도달하지 못했기에, 나로 인해서 이루실 일이 있기에 살아있는 것이다. 
내가 잘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기에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삶의 가치관을 바르게 인식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하게 될 때 그 어떠한 일이 우리 앞을 스쳐 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맡겨진 그 삶을 마치기 전까지는 사람이 죽고자 해도 안 죽는다. 
어려움은 나를 일깨우시기 위한,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를 정화 시켜나가는 순간이다. 
‘나’라는 한 생명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명이 귀함을 알게 하신다. 
우리네 생명 자체가 우리가 볼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습3:17) 하는 그 말씀과 같이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참 가치관을 찾아주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를 불러 모으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 각자의 삶을 최고의 자리까지 이끄시고자 하는 그 바램에 순응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귀한 생명이다. 
자기 삶의 가치관을 바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 삶의 조건을 항상 외부 조건으로 은폐하려고 한다. 
자기 속사람에 자신이 없으면 외부 조건으로 자신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 한 사람도 외부 조건에 의해서 자신을 변명하거나 외부 조건으로 나를 대변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 내가 그런 덫에 걸리지 않았나 돌아보고 깨닫거든 빨리 돌아서야 한다.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손대시기 전에 빨리 돌아서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삶을 드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나 자신을 외부 조건으로 은폐하기보다 나의 내부 조건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진짜 능력의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다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지켜보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다듬고 갖추어 입는다. 
덜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 
진짜 능력의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둘러선 사람들을 위해서 갖출 것은 갖추어서 나선다. 
한세상 사는 동안 자기의 겉모습을 통해서 은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내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런 능력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책임지시고 이끌어 가실 것이다. 

살아있는 자체가 무엇보다 귀한 것이다. 
단 한 사람도 가치 없이 소멸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나로 인해 이루실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나만이 해야 될 일을 아시고 나를 부르시고 그 일을 나에게 맡기시기에, 내가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게 하옵소서” 이렇게 아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 생명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실패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까지 사랑을 보이셨다. 
우리에게 범사를 통해 괴로움을 줄지라도 그의 생명을 건드리지 않으심은 언젠가는 그가 돌아서게 되기를 바라셔서 주시는 사랑의 기회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떠한 사실이 내 앞에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로 인해서 바라시는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드릴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골1:13~2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다시 말하면 그 사실을 완료형으로 당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삶을 옮기신다. 
그 순간으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신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어려움과 괴로움을 허락해서라도 이끌어내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을 ‘범사’라고 한다.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내시기 위해 ‘범사’라는 조건을 우리 각자의 형편에 꼭 맞게 허락하셔서 이끌어가심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자.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 조건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고, 현재 조건에서 내가 대두되기를 바라지만 그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내시기 위해 벌이신 그 일을 먼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이끌어내시기 위해 그 일을 허락했으면 나를 이끌어내신 그 조건에 발을 옮기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먼저 바란다. 
구조대원이 구조할 사람의 위치와 조건만 확인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합당한 조건이나 도구로 그 사람을 구해낸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하고 ‘범사’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내 삶의 조건에서 허둥대거나 “내가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짜내기보다 “주여, 나를 도와주세요!”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자. 

우리의 삶에 감사와 기쁨을 더하시고자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그 일을 먼저 아시고 우리를 불러 모으신 하나님께 감사로 화답하는 우리가 되자. 
내 주위 일들을 힐난하기보다 내 주위 일들을 내 입술과 생활로 보듬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는 단 한 생명도 낙오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가 절에 나가든, 무엇을 하든 그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우리의 마음을 드릴 수 있는 모두가 되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꼭 인도하실 것이다. 

(2010.06.06.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