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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75. 형제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 등록일 : 2026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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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8~9)


명절이나 기일(忌日)이 되어 후손들이 어른들을 찾아뵐 때 각자 나름의 조건에서 최대한 준비를 해서 찾아뵙지만, 때에 따라서는 조건이 여의치 못해 준비하지 못한 차림으로 찾아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마음만은 준비해서 찾아뵐 것이다. 
예배에 임하기에 앞서 우리 눈에 하나님의 형체와 그 실체가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나를 위해 허락하신 조건을 내가 아끼고 사랑함으로 서로가 인사를 나누고 예배에 임할 때 사랑의 실체가 우리의 얼굴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사실이 선행되고 예배에 임할 때 예배가 이루어진다.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을 뵙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허락하신 우주 만물을 감사함으로 지키고 보호하며, 나를 위해 허락하신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보듬는 것이 기본자세인 것을 잊어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허황된 신앙이다. 
이런 기복적이고 허황된 신앙에 도입하지 않아야 한다. 
‘신앙’이라는 것은 눈에 보여야 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 
사랑하는 아내의 몸을 통해 자식이 태어난다. 
우리는 그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듯, 내 손에 쥐이는 듯 생각하고 말한다. 
전화할 때도 몸은 서로 떨어져 있어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이 말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언뜻 생각하면 모호한 것 같지만, 아니다. 
나를 위해 허락하신 형제자매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심으신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형제들에게 심어놓은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내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닦아내고, 버릴 것은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찾아내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고, 참믿음의 생활에서 지켜야 할 본분이다. 

이런 사실을 기억해서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 먼저 나를 위해 허락하신 조건을 내 눈으로 보고 “내가 어떻게 하면 지킬까? 어떻게 하면 보호할까?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낼까?” 하는 마음 자체가 되어 있지 않고는 그 예배는 실패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내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손으로 쥘 수 있어야 정석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일거일동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나만의 길을 걷게 하시고 나만의 할 일을 맡기시고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 이루어 내는 것이 참 믿는 사람의 할 일이고, 예배에 임하는 사람의 할 일이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믿는다고 말하기보다도 나를 위해 허락하신 조건을 내가 바루고, 깨끗하게 닦고, 정리정돈해서 가꿀 때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되고 사랑을 보게 된다. 
이런 사실을 바르게 기억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일에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찬송가 171장에 보면 ‘평화’라는 말이 나온다.
‘평화’는 나만의 조건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화’는 너와 나, 우리의 조건으로 평화가 이루어진다. 
찬송을 드릴 때는 노래로써 그치면 안 된다. 
가사를 입술로 뱉을 때 이 사실이 나의 약속이다. 
이 사실을 실제 사실로 이루어 갈 때, 다짐하고 나의 약속으로 할 때 찬송이 되는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찬송이 우리의 삶에 되살아나게 하자. 

‘화평’은 우리의 가정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부분이다. 
한 가정이 이루어지기까지 부모의 관계를 바르게 이해시키기 위해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아이에게 사랑의 바램을 거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바램 가운데서 자란다.
‘부모의 바램 가운데서 자란다’는 말은 화평 가운데 부모를 알아간다는 말과 똑같은 말이다.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아이가 자라가면서 자기가 누구인가를 확인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설 자리, 자기가 해야 될 일을 하나씩 깨달아가는 것이다. 

아빠가 일과를 마치고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반기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하고 다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 다시 말하면 ‘화평’이 깨졌을 때 아빠의 마음은 속상하다. 
그런데 엄마가 나서서 아이들이 이러이러한 일로 그렇게 되었으니, 아빠에게 이해해 주기를 부탁하면 금방 일이 해결된다. 
엄마가 대변하는 조건을 통해 아빠는 오히려 고마워하고 그 가정은 다시 화평의 상태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일을 가볍게 넘겨버리고 내 마음이 상한대로 하게 되면 가정의 ‘화평’이 깨어진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수선한 교실을 보고 선생님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을 때 실장이 나서서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게 되면 그 한마디로 경직된 사실이 풀어지는데, 이 일을 맡은 실장이 입을 다물어 버리면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그 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된다.

이런 오류가 생기지 않게, 사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로 찾을 수 있게 먼저 화평을 깨뜨리는 조건을 제할 수 있는 지혜로운 모두가 되자. 
화평의 조건이 깨어지지 않게 그 일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모든 사실이 아름다워진다. 
누구라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 아름다워진다. 
엄마가 아니라 형제라도 대변하게 되면 모든 사실이 아름다워진다.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서는 안 된다. 
누구를 지적하기보다 화평의 상태가 깨어지지 않게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화평을 주장하신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 짐 지울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화평케 하는 일에 내가 제물이 되게 하소서”하고 변호할 수 있는 각자가 되는 것이 아름답다. 
하게 될 때 화평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화평 가운데 우리의 입술로 드려진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가누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와 함께하심을 만방에 알리신다. 

우리는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믿음의 사람의 생명은 육체는 소멸할지라도 영은 되살아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에게 바라시는 화평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고, 화평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일에 합당한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하고 물을 때 “우리의 모습을 봐라. 우리의 삶을 봐라.”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모두가 되자. 
“살아있는 동안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게 하소서.” 하고 입술 떼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와 함께하셔서 각자의 삶을 주관하실 것이다. 
이같이 확실한 믿음의 삶에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모두가 되자.

※ 믿음의 무리 가운데 세상 속에서 나름대로 사업체나 사회적인 조건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에서 믿지 않는 이들의 조건과 접해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를 불러 모으신 뜻대로 그 사실을 지켜나갈 수 있게,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게 기도하고 협력하는 우리가 된다면 사회에 나가서 수고하는 그 조건들이 감사로 이어지게 되고, 이 사실을 위해 기도하는 그에도 증거의 예표가 될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바르게 안착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2010.06.13.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