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요9:1~12)
사람의 일생에서 주어지는 조건들, 우리 생각에는 계획을 잘 세워서,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쉽게 단정 짓고 자기의 삶을 꾸려간다. 
(왕하5:1~14) 엘리사 시대에 아람 왕에게 나하만이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가 문둥병에 걸렸을 때 그 집에서 수종 들던 이스라엘 소녀가 말하기를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들은 나하만은 왕의 허락을 받아 왕의 서신을 들고 이스라엘 왕에게로 갔다. 
이스라엘 왕은 서신을 읽은 후 옷을 찢으며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문둥병을 고칠 수 있겠나? 이스라엘을 치려는 그들의 계략이 아닌가?”하고 고민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엘리사가 나하만을 자기에게 보내기를 왕에게 전했다. 
나하만 장군이 엘리사를 만나러 갔을 때 엘리사는 사자를 시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깨끗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나하만은 엘리사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고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할 때 그의 종들이 하는 말이 “만일 어려운 일을 시켰어도 했을 텐데, 하물며 몸을 씻어 깨끗하게 하라고 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나하만이 그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고 나왔더니 정말 몸이 깨끗해졌다. 
이 사실이 오늘날도 똑같이 벌어진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모든 매사, 우리네 사람은 병원이나 특별한 약이나 어떤 조건에 의해서 아름다운 사실이 주어지기를 바라고, 어떤 사람은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자기에게 유익한 조건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조건이 다르다는 것을 일깨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 우리가 해야 될 바를 먼저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내가 이렇게 하면, 내가 저렇게 하면”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일에서 빠져나오고자 온갖 궁리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됨을 찾는 데 마음을 두기를 바라신다.
부모가 자식을 매질할 때는 미워서가 아니다. 
자식에게 그러한 경고를 할 때는 자식의 갈 길을 보는 입장에서 자식에게 아름다운 사실이 주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사람 된 우리에게 이와 똑같이 우리를 지켜보시고, 우리의 심성에 맞게, 형편 처지에 맞게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신다. 
하지만 나름대로 조금 깨달았다, 조금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 위주에서 일을 시작하기에 끝에 가서는 자멸한다. 
잔머리를 쓰면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됨을 보시기 위해 우리를 견제하는 것이지, 우리를 죽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한세상 사는 동안 우리의 삶을 견제하시는 하나님께서, 참사람의 길을 걷게 하시고자 주신 사랑의 조건에 눈을 뜨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살아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가 아니다. 
자기가 건강을 지켜서, 자기가 무엇을 조심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것,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어서 생명을 주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이제는 참사랑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모두가 되자. 
우리의 생명이 마치는 그날에 두려움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돈이 있는 것도 좋고, 돈이 많은 것도 좋다. 
하지만 결국은 돈이 자신을 집어삼키고 끝내는 돈 속에 파묻혀서 자신이 온데간데 없어진다.
‘자린고비’라는 말 가운데는 자기가 묻혀버리고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곳에 놀러 다닐 것 같지만. 막상 돈을 버는 사람은 돈을 번다고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오락도 좋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오락이 자신을 집어삼키고 나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늪보다 무섭다. 
자신을 그런 상황에 밀어 넣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삶에서 빠져나오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지식도 좋다. 하지만 지식이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일에 쓰임 받지 못하면 그 지식 또한 결국은 무의미해진다. 
세상 조건은 결국은 우리네 사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늪이다. 
답답할 때 괴로울 때 손만 내밀면 언제나 나를 통해 역사하실 그 사랑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세상’이라는 조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시고자 우리 앞에 놓인 하나의 늪과 같다. 
이 늪에서 나오고 난 뒤에 내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해야 나올 수 있다. 이쪽으로 와야 나올 수 있다.” 이 사실을 알게 하고자 거쳐 가는 한 과정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허망한데 내던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한세상 살아갈 때 자기 자신만 돌아보지 말고, 내 가정과 내 자식의 조건을 돌아봐라. 
그다음은 자기 주위의 모든 조건을 돌아봐라. 돌아보면 “내가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세상 사는 날 동안 맡겨진 세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의 입술과 생활이 되기를 바란다. 
하게 되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고 내 앞에 가져다 두신다. 
지금도 내가 필요한 것을 먼저 아시기에 예비하시고 조건을 갖춰주신다. 
믿지 못해서 그렇지, 믿기만 하면 이러한 사실이 지금도 똑같이 모두에게 임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의 생활에서 바르게 안착시켜 나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바르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심을 기억하자. 
내게 주어진 모든 조건, 나를 위해 주신 사랑의 조건임을 알면 자신을 건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고자 오늘도 애쓰심을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요9:1~12) 이 말씀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사실은 실로암 못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지, 실로암 못이 거룩한 곳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실로암 못에서 눈을 씻어서 나았다고 지금도 낫는 것이 아니다. 
실로암 못이 훌륭한 곳이 아니라 사랑을 나타내셨던 곳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나로 인해 내 주위 형제가 감사와 기쁨을 되찾는 아름다움은 실로암 못에서 역사하셨던 것보다 더 귀한 역사일 것이다. 
실로암 못에서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떴지만, 나로 인해 감사와 기쁨을 되찾은 내 주위 형제들에게는 평생을 좌우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의 위치를 지키는 각자가 되자. 
‘나’라는 한 존재를 통해서 내 주위 형제가 잃어버린 감사와 기쁨을 되찾고, 나로 인해 내 주위 형제가 잃어버린 기회를 되찾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에 역사하셔서 사랑을 나타내시고자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다. 
하게 되면 이스라엘에 있던 실로암 못에서뿐 아니라 어느 때나 어느 순간에나 역사하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주어지게 되게 마음을 열고, 나로 인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리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우리의 입술과 모습, 일거일동이 되게 하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로 인해서 이루실 그 일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꼭 역사하실 것이다. 
나로 인해 내 주위 형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그 사실을 기뻐하실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모두의 삶에 담기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 우리가 바라는 것을 절대 뒤로 미루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사실을 이루기에 앞서 내가 바라는 바램을 앞당기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로 인해 이루실 그 일을 먼저 앞당길 때 우리의 모든 사실을 익히 아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며 우리의 삶을 일깨우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사실이 바르게 안착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2010.06.27.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