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20:8~11)
사람의 형상을 띠고 이 세상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지사다. 
하지만 수억 원의 돈을 버는 사람도 어차피 죽는다. 
어차피 죽는 데도 사람은 별것 아닌 일에 생사를 건다. 
사람이 죽으면 근본 된 흙으로 돌아간다.
(창2: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그 사람만의 모습을 띠고, 그 사람만의 조건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사는 동안 그 사람만의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사람’이 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형상을 띠고 움직인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띠었으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삶을 사는 사람이어야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종착점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라고 매듭을 지으신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나’라는 모습에, ‘나’라는 조건에,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될 자리까지 정하셔서 나만이 해야 될 일을 먼저 아시고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맡기신다. 
이러한 사실을 바르게 깨달아서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는 어느 가문의 몇 대손이고, 나는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이 말은 사람의 근본 된 사실을 찾아가는 하나의 통로라는 말이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어떻게 살아야 될지 그 길을 알 수 있는, 그 지혜를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모티브가 된다는 말이다. 
사는 날 동안 이 사실을 찾지 못하면 수천억이 아니라 세계를 쥐고 흔드는 능력이 있어도 끝내는 추하게 끝이 난다. 
이왕 이 땅에 와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딱 한 사람 ‘나’라는 사람으로 세상에 왔으면 나만이 해야 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 
‘성공’은 자기만이 해야 될 일을 찾아, 자기만의 일을 통해서 감사할 때 ‘성공’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라는 존재를 파악한 사람은 그 순간으로 성공한 것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할 때 머리가 열리고, 그의 앞길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내신 연유대로 쓰임 받게 하신다. 
“나에게만 맡겨진 임무가 있다는 사실을 바르게 깨달아서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맡기신 나만이 해야 될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내가 되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시고 우리에게 맡기셨다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려가야 정석이다.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지만,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창조주를 믿지 못하는 바람에 귀신이 간섭해서 사람을 농락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냈을까?” 이 의문을 바르게 이해하고,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고 결단만 하면 우리의 모든 사실은 금방 해결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셔도 내가 자라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일로 가지 못하기에, 그러한 사실을 먼저 아시고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게 관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무조건 퍼준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 간의 조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키워가심을 알게 하신다. 
다시 말하면 막무가내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모티브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같이 매 순간, 한 걸음씩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고, 범사의 조건을 통해 우리의 삶을 일깨워가심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것을 지적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12:12)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막3:4)라고 하시며 당연한 사실이 아니냐고 반문하셨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가 내 주위 형제를 바르게 지키고, 보호하는 날이 이날임을 알게 한다. 
너 자신의 유익을 위해, 너 자신의 조건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 형제를 보듬고, 지키고,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그러기에 안식일에 형제를 미워하고 형제의 조건을 질시한다면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예배를 드리는 주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아무리 상하고, 내 마음의 조건이 틀어졌어도 안식일 날 모든 것을 풀지 못하면 ‘죄’가 된다. 
안식일을 수없이 지내고도 내 주위 형제들을 미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고 귀신에게 속았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통해서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누지 못하면 귀신에게 속은 것이다.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주일은 귀신과 같이 노는 날이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 아닌 것이다.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안식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와 함께하심을 드러내시고자 하셔도 우리 스스로가 이 일을 훼파시키는 바람에 역사하지 못하시는 것이다.
안식일이 이런 어리석음을 정리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게 하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하신 말씀과 같이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 
한순간의 말이나 행동으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써 그 일을 감당하는 모두가 되자. 
사는 날 동안 참믿음의 삶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알리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2010.07.04.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