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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78.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등록일 : 2026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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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가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10:27~30)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4~40)


한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시고 나를 통해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일구어 내시기 위해 내게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나를 보내셨는데 우리는 거기 서서 그들과 똑같이 행동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 하신 말씀은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 이같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막10:27~30, 마22:34~40) 궁극적으로 따지면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 그가 내게 도움을 안 주면 내 수고는 소실되어 버리잖아”하고 생각하고, 도와주려고 해도 ‘도와줄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시간이 지나버린다. 
이런 일들이 우리 앞을 수없이 지나간다. 
예를 들면, 버스에 앉아 있는데 몸이 힘든 사람이 탔을 때 ‘일어설까? 말까?’를 고민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서려고 할 때 앞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버리면 ‘진작에 할 걸’ 하고 생각한다. 
내가 진작 자리를 양보해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자리에 앉았더라면 내 마음이 풍요로웠을 텐데,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서 내가 해야 될 그 일을 그에게 미루었을 때 지나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다.
하지만 ‘다음에는 내가 꼭 먼저 자리를 양보해야지’ 하고 마음에 다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나중에는 그 일을 당연한 것처럼 머릿속에서 떠올리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떤데?’ 하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사실을 내가 뻔히 보고도 방관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도 내 어려운 처지를 유념하지 않고 넘어가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범사라고 한다.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막10:29) 
쉽게 말하면 현재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나 스스로 제거시키고 나 스스로가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이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나? 내게는 왜 그런 조건이 안 주어지나?”라고 한다. 
조건이 안 주어지게 본인이 만들었을 뿐이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기가 다 잘라놓고 난 뒤에 그런 조건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한 사실이 내게 주어지기를 바라거든 내가 사전에 그러한 삶을 살게 되면 어차피 그 사실은 내게 다가온다. 
하지만 내가 다 잘라놓고 난 뒤에 내게 어려움이 있을 때 내 어려움을 면할 수 있는 조건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지난날 아담을 세상에 내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를 세상에 내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일구어 내시기 위해 나를 사용하심에 감사함으로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일평생 책임지실 것이다. 
나를 통해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말씀을 일구어 내시고자 오늘도 내게 숨을 쉬게 하시고, 눈을 떠서 세상을 보게 하시고, 두 발로 걸어 다니게 하시고,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허락하신 것이다.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그 말씀을 나로 인해 이루어 내시고자 오늘도 내게 삶을 허락하심에, 나의 삶을 드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시고 함께 하실 것이다. 

자기가 자기의 일을 다 주관해버리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없다. 도우실 일도 없다. 
그 일을 자기가 책임져야 되기에 그 일은 어차피 잘못되어야 정석이다. 
이왕 우리가 살아갈 바에는 한세상 사는 날 동안 나로 인해 내 주위가 감사케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그것도 나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멀리 있는 사람을 자꾸 도우려고 한다.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일까? 가정이다. 
다음으로 가까운 사람은? 내 주위 형제들이다. 
밖의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내 안을 정비하지 못하면 속이 다 썩어버린다. 
그러기에 내 주위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먼저 하고 난 뒤에 그 힘의 여세를 밀어 점차 내 주위를 정리하게 만드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신기하게도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제쳐두고 멀리 있는 사람을 자꾸 도우려 한다. 
먼저 내 주위 형제와 내 주위 가족의 일을 정리하고 난 뒤에 여분이 생기는 대로, 좀 더 넓게 나 혼자 하기 어려우면 내 주위의 힘을 모아서라도 내 주위 전체를 정비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할 일이다. 

내가 도움을 바라고자 하거든 먼저 내 주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부터 정비해 나가야 한다. 
멀리 있는 사람을 도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꼭 역사하신다. 
이 사실이 바르게 정립되지 않고는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결국 망하고 만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 
사람이 사람의 일을 걱정하고, 우리가 우리의 일을 걱정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일이 없다.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하시며 계속 말씀하신다. 
그럼, 걱정하지 말고 속 편하게 놀라는 말인가? 아니다. 
내 주위 일들을 먼저 보듬어야 한다. 
내 주위 일들을 나 스스로가 차단해 버리고 훼파하는 바람에 우리의 일이 어려워졌을 뿐이다. 
내 주위 일들을 나 스스로가 나서서 입을 막고 면전에서 훼파하는 바람에 그 사람과의 대화가 끊어지고 마음을 열 수 있는 조건이 없어져 버렸기에 하나님께서 도우실 통로를 막아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일을 우리가 막아놓고 도움을 바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한세상 사는 날 동안 우리의 삶을 통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만들어 내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내 마음을 닫게 하는 일들,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을 나 스스로가 나서서 그 일을 깨끗하게 정리해버리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역사하신다.

내 마음을 열고, 내 조건을 여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우리의 모든 사실이 아름다워진다. 
이 일을 정리하지 않고 내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마음을 닫게 하는 일을 만들어 놓고 내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감사함으로 마음을 열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손길이 함께 하신다.

이런 아름다운 손길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때 세상의 모든 조건이 진정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그 조건대로 감사하게 된다. 
우리의 만남과 조건들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게, 마음을 열고 생활을 열어 형제의 얼굴을 보게 될 때 나로 인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모습이 내 주위에 비취는 아름다운 역사가 주어진다. 
이런 아름다운 역사가 주어질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우리의 모든 사실을 감사와 기쁨으로 이끌어 가신다. 

(2010.07.18.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