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갈수록 땅 위의 모든 조건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간다. 
지난 세대의 조건보다 지금의 조건이 몇십 배, 몇백 배 더 빠르다. 
요즘 사람들은 “그걸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요? 그걸 하면 성공할 수 있어요? 그걸 하면 잘 될 수 있어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 일이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신앙도 저버리는 것이 오늘날 세대들의 생각이다. 
“빛 된 생활을 하려면 내가 먼저 잘되고 봐야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안 계시고는 자기가 잘되고, 안되고 거기에 달려있다고 보고 나간다. 
교회가 크고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무조건 잘 살아야 된다. 내가 잘되고 봐야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기에 내가 잘못되면 믿음도 저버리게 된다. 
끝에 가서는 하나님이 도우시려고 해도 하나님이 도우시기 전에 자기가 먼저 포기해 버린다. 
지금의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지난날 그들이 생각하고 보아왔던 조건에 안주해 버린다면 지금의 조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구세대의 입술로, 구세대의 조건으로 신세대의 자라오는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면 먼저 그들을 일깨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새로운 세대를 이끌 수가 없다. 
새로운 세대를 이끌려면 그 아이들을 능가하는 조건을 갖춘 후에야 그들에게 권장할 때 그 아이들이 돌아서게 된다. 
그 아이들도 우리 나이가 되면 깨닫기는 하겠지만 그러면 너무 늦다. 
그 전에 돌아설 수 있는 아이들이 될 수 있게 현재의 삶에 너무 안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삶이 다인 것처럼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하면 비집고 나아갈까?” 하기보다 “내 후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올바른 신앙관을 심어줄 수 있을까? 내가 보았던 그 사실을 어떻게 하면 후대들에게 바르게 전해줄 수 있을까?”에서 시작하는 우리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능력을 허락하신다. 
그러려면 다윗처럼 지나온 조건에서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자기의 실수나 조건에 머물지 않고 그 사실을 바르게 토로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이 자기의 삶을 통해 독백했던 그 사실, 비록 자신이 그러한 삶의 과정을 거쳐왔지만 끝내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은폐하지 않고 인정하며 그 사실을 보완했던 사실, 비록 사울에게 쫓기고,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면서도 그 사실을 저버리지 않고 자기의 삶을 굳건히 살아왔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나’라는 사람이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그 일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인정하고, 그 일을 통해 나를 일깨우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나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꼭 능력을 허락하신다.
살아있는 동안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바르게 깨달아서 나로 인해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되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사랑을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꼭 역사하시고 함께 하실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지난날 내가 알았던 그 사실, 지난날 내가 보았던 그 사실에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은 것은 우리 앞에 두시지 않는다. 
내가 관장하지 말아야 될 것은 우리 앞에 두시지 않는다. 
길을 가다 바닥에 병이나 위험한 것이 버려져 있다. 
내가 그 일을 보고도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서 지나가는 사람이 그 일 때문에 피해를 봤다면 내 마음이 개운치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왕진 가방을 든 의사가 급한 환자가 있으니 차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집에 돌아와 보니 부인이 아파서 의사를 기다리다 결국은 죽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그냥 지나쳤던 그 의사가 바로 자기 집으로 오려던 그 의사였다. 
내가 방임하고 무관하게 지켜봤던 그 일이 훗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조건으로 닥친다면 참 가슴이 아플 것이다. 
이런 오류가 생기지 않게 내 대에서, 내 조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내가 그 일을 마무리 짓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내가 그 사실을 뻔히 보고도 무관하게 넘겼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일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른다면 가슴이 아플 것이다. 
이런 오류가 생기지 않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두 눈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한 사람이라면 그 일을 누구에게 미루기보다 내가 먼저 나서서 그 일을 바르게 정리해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그 사실을 이루어 드리는 우리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길 원하셔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심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믿기만 하면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우리도 똑같이 그와 같은 일에 동참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하실 것이다. 
그 사실을 예수님께만 지울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지나온 그 과정을 우리 또한 이수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함께 하신다.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과 같이 그 사실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이같이 ‘나’라는 한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내가 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 모든 죄를 대속하신 대속자로 오심과 같이 ‘나’한 사람의 조건을 통해 내 주위를 건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로 선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실 것이다. 
이것을 본받아 가는 생활을 ‘신앙생활’이라고 한다. 
‘신앙생활’이라는 자체가 본받지 못한다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아멘”으로 화답할 때 예배가 이루어진다. 
한세상 사는 날 동안 자기에게 연루된, 자기에게 맡겨진 그 조건을 바르게 가꾸어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그 일을 내가 이수하게 될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는 세상을 나를 통해 이루어 드리게 된다. 
그러기에 후대를 키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이 사실을 알리는 일에 게으르지 않은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살아있는 동안에 나로 인해서 내 주위를 다듬는 일에,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자. 
내 주위 일을 뻔히 보고도, 내가 가꿀 수 있음에도, 내가 다듬을 수 있음에도 그 일을 도외시한다면 그 일을 보는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물으신다.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힐난하기보다,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지적하기보다 그 사실을 본 사람이라면 내가 조금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조금 곤욕을 치르더라도 그 일을 가꾸는 것이 옳지 않겠나 반문하신다. 
예수님을 우리 앞에 ‘맏아들’(롬8:29)이라 하는 칭호를 붙여가며까지 예표로 세우셨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대속자로 세우신 예수님의 그 조건처럼, ‘나’라는 한 조건을 통해 전체의 그 일은 하지 못하더라도 내 주위의 사랑하는 형제들, 작게는 내 가족을 위해서 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어준다는 말’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내가 바른 행동을 하고 전해야 될 그 사실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하게 될 때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기뻐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조건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조건을 통해서 또다시 그 일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아름다움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의 사는 날 동안 꼭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에게 영이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의 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키실 그 사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내 현재 조건에 치우치지 않고 먼 훗날 영원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미래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영이 있고 언젠가는 그 영을 통해 새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뜻대로 살아있는 동안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되자. 
먼 훗날 우리의 삶에 마침표를 찍게 될 때 나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사실을 돌릴 수 있게 하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이 주어질 것이다. 
(2010.07.25.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