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의 일을 자기가 가늠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기의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양 일을 벌이다 끝내는 모든 조건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데까지 간다. 
이런 사실을 미리 간파해서 잘못된 사실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게 방비할 때 그 사람을 ‘지혜롭다’라고 한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그 사실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닥치고 나서야 “내가 왜 이렇게 피해를 봐야 하나?”라고 반문한다. 
피해를 보는 것은 깨닫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범사이다. 
내가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 조건을 스스로가 인지해야 하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일을 주위의 원망으로 돌려버린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7:7~8) 
다시 말하면 자신의 모든 일거일동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설령 잘못된 일이 있을지라도 그 사실을 먼저 인지하시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고, 정금같이 다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나아갔던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기에 내가 잘못을 저질렀던 그 일에 대한 대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그러한 사실을 당연하게 여겨 받아들이고, 그 사실에 주눅이 들어서 자기의 모든 일을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그 일을 통해서 더욱더 연단하여 정금같이 나오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살면서 자기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대가 때문에 주눅이 들어서 자기의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끝내 주저앉아 버릴 때 이것을 ‘어리석다’라고 한다. 
잘못을 잘못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실수를 했으면 실수한 그대로 인정하고, 자기가 해야 될 일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용감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귀신들의 장난은 이렇다. 우리가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때는 가만히 놔둔다. 놔뒀다가 언제 건드리느냐? 
그 일을 되돌릴 수 없다고 하는 자신의 인식을 포착했을 때 그때 침투한다. 
침투하면 그 자리에서 넘어져 일어서지 못한다. 
그 일을 사탄이 먼저 알기에 항상 그렇게 침투한다. 
그러기에 이 일을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어차피 내가 저지른 잘못이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고, 내가 서야 될 자리를 지키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그 어떠한 조건도 우리를 넘나들지 못한다.
가정에서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가 벌을 준다. 
그 자식이 깨닫기를 바라고 다시 부모의 바램을 따라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바램이다. 
그 자식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망가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자식이 그러한 조건을 통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게 하기 위한 부모의 사랑이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 자식을 힐난하거나 때릴 때 부모는 절대 그 일을 간과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일에 대한 조건을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시지, 누구에게 함부로 맡기지 않는다. 
끝내 그 일에 간섭해서 사랑으로 이끌어 가신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자그마한 잘잘못 때문에 스스로가 덫을 걸어 그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우리를 내놓으셨을 때는 그 일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러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세계를 움직여 가신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꼭 나타내시고 역사하신다. 
지난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일을 통해 다윗이 자신을 내동댕이친 일이 있었다. 
다윗이 그 일을 그대로 다 고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일으키셔서 전무후무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것을 어차피 아신다. 
그렇다면 그러한 일에 우리 스스로가 덫을 걸고 스스로가 그 일을 단절해서 스스로가 그 일의 조건을 감안 하기보다, 우리의 모든 사실을 토로하고 내놓은 뒤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간섭하셔서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실 그날을 보고 우리의 할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실을 통해 역사하신다. 
누구의 일을 탓하기보다, 누구의 일을 지적하기보다 그러한 조건은 내가 만드는 것도, 누가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실을 익히 아시기에 우리의 조건을 따라 범사를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보이신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때문에 ‘혹여나 이 일로 인해 큰 일이 벌어질까?’를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걸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어라. 
내딛게 되면 용서에 능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실을 보듬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까지 사랑을 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실을 책임지시고 감사로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신다. 
그러기에 자그마한 조건으로 인해 우리 자신을 숨기는 어리석은 일을 벌이지 않는 믿음이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사실을 아름다운 길로 꼭 인도하신다.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실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지키시고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설령 그가 절에 다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팽개치지 않으신다. 
참믿음의 삶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나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참믿음의 삶을 깨닫는 데까지 자랄 수 있게 자신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고 세상을 움직여 가신다. 
그러기에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네 사람을 통해 역사하실 그 사실을 이루시기 위해 단 한 사람도 필요 없는 사람은 세상에 보내시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떠한 조건에 처해있든 필요치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내지 않으신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 스스로가 그 일을 지적하기보다 그 사람을 통해 이루실 일을 돌아보고, 나 자신을 가꾸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지난날 바로 왕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것도, 악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다. 
왜냐하면 당시에 최고의 강대국이었기에 그의 삶을 통해서, 그의 입술에 주어지는 명령을 통해 온 세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고자 그를 강퍅하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바로 왕처럼 삐딱하게 쓰임 받기보다, 악한 일에 쓰임 받기보다 나로 인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비록 그가 불상 앞에서 빌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셨기에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릴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어느 때든지 우리가 알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것이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지으셨기에 우리가 할 일은 “저 사람은 지옥 갈 거야”라고 말하기보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고자 예비하심에 이왕이면 우리의 삶을 통해 그도 돌아설 수 있게 하옵소서”라고 하고 나 자신을 가꾸고 다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모두가 되자.
내 주위에 잘못된 일을 힐난하고 지적하기보다 그들이 나로 인해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갈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이왕이면 아름답지 못한 일에 쓰임 받기보다는 나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아 감사로써 화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잘 때나 일어날 때 “내 손끝으로 주어지는 모든 일, 내 머리로 구상하는 모든 일, 내 몸으로 하는 모든 조건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나의 일생이 되게 하소서” 하고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내심을 기뻐하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우리의 일평생에 끊이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롬12:1~2)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다. 
우리를 향해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바램임을 바르게 인식해서, 사는 날 동안 내 주위 형제들이 참사랑에 입각한 믿음의 삶을 살아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돕는 모두가 되자. 
나 자신의 안일도 귀하고, 나 자신의 풍족도 귀하지만 나로 인해 내 주위를 평온케 하는 일에 쓰임 받는다면 우리의 갈 길을 하나님께서 일평생 꼭 책임지실 것이다. 
우리가 나를 위해, 내 가정을 위해, 내 자식을 위해서만 한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우리에게 반문하신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자기의 일에 치우치기보다 내 주위에 좋지 못한 일, 바르지 못한 일, 자신을 가누지 못한 일을 보게 될 때 나의 삶을 통해 바른길로 인도하고 돕는 위치에 선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심을 기뻐하실 것이다.
목수가 톱질할 때 톱날이나 톱 몸체가 바르지 못하면 그 톱이 삐딱하게 나가버린다. 
끝내는 쓸 수 있는 톱으로 만들기 위해 다듬어야 한다. 
이러한 일이 사람에게 주어질 때 고통, 고난, 어려움이라고 한다. 
어려움 자체, 고통 자체가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쓰임 받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재장전하는 아름다운 시간임을 알고 그러한 사실을 피하기보다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우리의 모든 삶이 감사로 이어지게 하실 것이다. 
망치질할 때 망치 밑둥치가 바르지 못하면 때리는 그 사람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못이 삐딱하게 나가버린다. 
우리의 모든 사실이 바르게 정립되지 못하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그 일 자체가 삐딱하면 우리를 쓸 수 있는 연장으로 만드시기 위해 새로이 다듬으신다. 
그것을 우리가 고난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연단이나 고난 자체가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새로이 갖추어서 쓰시기 위해 재장전하는 것이기에 그 사실을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내게 주어지는 어려움과 고통 때문에 이 일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언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그 조건을 감사함으로 빠르게 마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감사의 조건을 꼭 허락하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망치로 못을 박을 때 정확하게 맞지 않고 비뚤어지면 못을 튀거나 휘거나 심지어 주변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잘못된 일을 지적할 때 그 사실을 바르게 지적하고 필요에 따라, 주위의 바램을 따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정확하게만 해주면 참 좋겠지만 자기 의도대로, 기분대로, 생각나는 대로 해서 그 조건을 바르게 이수하지 못했을 때는 제2의 책임을 본인에게 묻는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지 않게 내가 다듬는 그 조건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일에 합당한 조건으로 이행될 수 있게 자신을 건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누구를 탓하기보다 그 일을 건사하는 사람이 바르게만 한다면 설령 그 일이 삐딱한 일이라도 바르게 될 수 있다. 
이런 아름다움이 각자에게 바르게 안착되고 머무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우리에게 주어진 범사가 감사로 돌아오게 만드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잘못된 일을 지적하든지 뭘 하든지 내가 입을 떼서, 내가 일을 해서, 내가 나아가서 나의 하는 일과 조건을 통해 주위가 평온해지고 감사로 마무리 짓는 역사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심을 기뻐하시고 나를 통해 이루실 일을 우리에게 끊이지 않고 맡기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그 자체를 기뻐하신다. 
이왕이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쓰임 받는 우리가 된다면 더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바로 안다면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하시는 세상을 일구어내시고자 오늘도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또 우리에게 예속된 모든 사람도 똑같이 맡길 수 있게 서로 돕고 마음을 합치는 모두가 되자. 
(2010.08.08.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