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한 고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한 고로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영(嶺) 위의 기호(旗號)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30:15~18)
주어진 모든 매사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기 삶의 가치관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조건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스스로가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하든 기억하지 않든, 하나님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고 지키신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보고 지키심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할 뿐이다. 
예를 들어, 부모는 밖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 마음이 자식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설령 병원에 누워 있어도 그 마음만은 자식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말 가운데는 “하나님의 모습을 담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기에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 땅에는 자식의 일을 돌아보지 않는 부모도 있겠지만 자신의 너울에서 빠져나와 부모의 자리로 돌아가면 그도 자식의 일을 기억하게 된다. 
아무리 자식을 내동댕이친 부모라도 자기 자신을 찾게 되면 부모의 자리를 다시 기억한다. 
세상 조건에 치우쳐서 허우적대다 자식을 내동댕이쳤다 해서 그 자식을 잊어버리는 부모는 땅 위에 아무도 없다. 
설령 짐승이라도 자기 속으로 낳은 새끼들을 돌보는데 사람이 되어서 그 일을 바르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이제까지 우리가 바르게 살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내 조건대로 함부로 자신을 내동댕이친 그 자리에서 돌아서서 우리의 삶을 되찾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나님을 믿는다. 안다’ 하는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 사랑의 개념에서부터 첫걸음을 떼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사랑의 개념에서 벗어나면 잘못하는 것이다. 
믿음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참사랑의 개념을 바르게 인식해서 자신부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알리는 일에 첫걸음을 떼는 모두가 되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아이는 “나는 이렇게 하고 싶고, 저렇게 하고 싶다.”라고 해서 함부로 움직이지만, 부모는 다음에 벌어질 일을 알기에 아이를 혼내서라도 자기 자리에 데려다 놓는다. 
혼이 나면 울기는 하겠지만 나중에 아이가 자각이 주어지고 나면 그 자리를 찾아간다. 
그러기에 이처럼 우리가 알든, 알지 못하든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사야서의 말씀에도 이런 사실을 계속해서 비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간섭하심을. 
부모는 먼 훗날 자식에게 필요하다 싶어서 학교에 보내는데 자식은 “왜 아빠 엄마를 떠나서 가기 싫은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혼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학교에 간다. 
먼 훗날이 되면 ‘내가 그곳에 가야 하는 것이 정석이구나!’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 괴로움, 답답함을 허락하신다’라는 말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 뒤의 모든 일을 책임지실 것을 작정하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현재 내 앞에 닥친 일만 기억하지, 다음에 다가올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현재 내가 잘하고 있으니 잘될 것 같다. 천만에. 
사랑의 개념 자체가 바르게 정립되지 못하면, 주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넘어지고 만다. 
넘어지면 그를 기억하는 주위 사람들이 많으면 많은 만큼 도움이 되겠지만, 주위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으면 적은 만큼 그의 삶은 어려워진다. 
“저 사람은 혼자서 잘할 거야. 혼자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넘어져도 일어날 거야”라고 돌아보지 않게 된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삶이 우리의 삶에 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날 좀 잘났다고 하는 부모들이 “내 속으로 낳았고, 내가 다 해줬기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천만에. 
주위와 그 일을 교류하지 못하면 언젠가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아이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그 일을 누가 책임지나? 책임지지 못한다. 
주위에서 그 일을 돌아보지 않는다. 
넘어지면 오히려 주위에서 손뼉을 칠 수도 있다.
주위에서 하는 말이 “그럴 줄 알았다” 할 수도 있다. 
이런 어리석음이 우리 주위에 자리 잡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은 좀 못하고, 조금 뒤처진다고 해서 걱정할 일이 아니라 그 아이가 주위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랑으로 교류하는 아이로 자란다면 그 아이는 언젠가는 자기 삶의 가치관,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에까지 자라갈 수 있다. 
아이가 근본 된 사실을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그 삶의 결과가 달라진다. 
하나님께서 본인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자식을 그 몸으로 태어나게 만드셨지, 자기 자식 아니다.
“네 속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네가 그만큼 사랑하느냐? 그러면 네게 생명을 준 나는?” 이렇게 우리에게 질문하실 때 할 말이 있어야 한다. 
진정 믿음의 삶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사랑의 근본 된 사실을 바르게 깨달아서 비록 내 자식이 지금은 조금 모자라도, 아니면 내 자식이 지금은 조금 앞선 것 같아도 주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아이로 자라서, 필요성을 갖는 아이로 자라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부모의 할 일이다. 
오늘날 부모들이 그 필요성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아이들이 자라면서 빗나가버린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생기지 않게 참 믿는 부모의 위치에 서서 내 주위를 돌아보고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내 속으로 태어난 자식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바로 깨달아서,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내게 그 자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내 자식으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에 자식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될 때 우리의 갈 길이 바르게 정립되고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 속으로 태어난 자식을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바르게 인도하실 것이다. 
교역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가르치는 위치에 서기에 앞서 내가 먼저 배움의 위치에 바르게 서야 한다.
왜냐하면 ‘내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내 입술로 뱉은 그 말을 과연 감사함으로, 은혜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다시 말하면 내가 그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과연 내 입술로 뱉어진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이 아멘으로 받을 수 있겠나?’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리매김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런데 ‘가르쳐야 한다. 나는 전도사다. 나는 목회자다.’ 아니다. 
그 자리에 자리매김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그 자리에 서서 그 일을 행할 때 그 일을 받는 사람이 올바르게 받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했을 때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일을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을 꼭 허락하실 것이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우리에게 화답하실 것이다. 
(사30:15~18) 이 말씀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닥치면 이러한 훈계의 말씀, 사랑의 말씀을 언제 들었냐는 듯이 내동댕이치고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 조건대로 행하는 것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이 말씀은 사람에게 주어진 당혹스럽고 당황스러운 일들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 경고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을 벌이신 하나님께서 그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 이끌고 오지 않아야 정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일이 우리에게 필요 없다면 끌고 오지 않아야 정석인데도 우리 앞에 끌고 왔다는 것은 그러한 조건을 통해 우리를 키우시고자 예비하신 사랑의 배려임에, 그 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 믿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의 할 일이다.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을 때,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망하리라’ 하면 네가 도망가는 그 발걸음보다 너를 좇는 자가 더 빠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당혹스러운 일이 닥칠 때 네가 도망갈 것을 뻔히 안다. 네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네가 피하고자, 숨고자, 변명하고자 하는 것을 뻔히 안다는 말이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피하려고,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깨닫게 하시고자 예비하신 그 일에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말을 타고 도망가리라’ 다시 말하면 그 일을 피해 보리라 하면 따르는 자가 더 속히 따라 붙여서 그 일을 덮쳐버린다. 
‘네가 그 일을 피하기보다, 도망가기보다, 그 일을 떨쳐버리려 하기보다 그 일을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네가 되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느냐?’라고 하신다. 
우리가 알지 못해서 ‘내가 이렇게 하면, 내가 저렇게 하면 내 자식이, 우리 집안이 잘되지 않을까?’ 하고 자기의 조건대로 그 일을 진행해 나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익히 아시고 우리의 삶에 요동치는 그런 어려움이 생기게 만드신다. 
나를 깨닫게 하시고자 일으키신 그 일에 순복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통해 우리의 갈 길을 더욱더 안전하게 이끌어 가실 것이다.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2010.08.15.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