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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84.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등록일 : 2026년 4월 28일
  • 조회수 : 117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참믿음의 삶에 도입한다’는 것은 갑자기 사후 세계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거나 어떠한 사실이 내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그 조건 때문에 좌지우지하지 않고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이루실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내 생명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마침표를 찍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게 기회를 주실 것이다. 
각자마다 여러 수천 번의 조건을 주실 것이다. 
하지만 마냥 기회를 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을 허락하시고, 생명을 허락하신 연유대로 구역을 정하시고, 구역을 정하신 연유대로 우리의 심성에 따라 모든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우리에게 물으신다. 
“네가 살아있는 이유를 아느냐?” 이 말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의 삶에서 스스로가 변명할 수 없다면 그는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삶의 방향을 모르고 죽으면 죽어서도 헤매게 된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깨달을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세상에 보내시고,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주위 형제를 허락하셨는데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현재의 내 궁핍한 삶에, 현재의 내 어려운 삶에 치중한다면 그의 삶은 일평생 고생해야 정석이다. 
그러고는 주위를 원망한다는 것은 그 사실을 그 자손에게까지 물리는 것이다. 
어려움을 자기만 겪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물려서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어렵고, 괴롭고, 답답한 것은 사실은 감사할 일이다. 
어렵다는 것은 내가 벌을 서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기회가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기에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거기서 좌절하거나 도피하려고 헤맬 것이 아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사랑의 기회를 놓지 않았구나!’하고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 덫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고 나무랄 때 자식에게는 참 죽을 맛이지만 부모는 그 자식이 깨닫고 돌아오면 그에 대한 수십 배의 대가로써 자식을 위로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조그마한 어려움 때문에 우리 자신을 내동댕이치는 어리석은 자리에 놓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에 어려움, 괴로움, 답답함이 있거든 오히려 감사함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믿음의 사람은 즐거울 때, 기쁠 때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내 삶에서 고쳐야 될 점을 먼저 아시고 나를 일깨우시는구나!”하고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하게 되면 그 어떠한 것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하고 넘어뜨리지 못한다. 
이 같은 믿음의 삶으로 자리매김한다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언제나 함께하심을, 나를 지켜보심을, 나를 일깨우심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나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그 일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절대로 멈추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영계의 일을 보는 영매들이 하는 일을 신기해한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각자에게 계획된 범사를 도둑질해서 누설했을 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범사의 일부분일 뿐이지, 그 일 때문에 우왕좌왕해서 흔들린다면 귀신에게 속는 것이다. 
귀신은 아무리 해도 범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깨닫게 하시고, 사랑의 길로 이끄시기 위한 사랑의 계획을 도둑질해서 누설하고 두려움을 줄 뿐이지, 그 사실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것이 사실인 양 거기에 치우쳐서 머물러 버린다면 속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이 닥칠 것을 알았으면 “나를 도우소서. 내가 돌아서겠나이다. 나를 깨닫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하고 돌아선다면 하나님께서 그 순간으로 나를 위해 계획하셨던 범사를 바꾸어서 우리에게 감사와 기쁨으로 화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시고, 또다시 기회를 주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며 우리가 범사를 통해 돌아설 수 있게 끊임없이 기회를 주신다. 
그래서 “너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인도하시리라”(잠3:6) 하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귀신이 농락하는 것이라도 그 일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우리를 좌지우지하지 못한다.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방편이기에 우리가 돌아서면 끝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믿음의 생활을 하다 보면, 기도 생활을 하다 보면 자꾸 환상을 보기를 바란다. 
그 사실을 봐도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보고 난 뒤에 그 사실을 믿지 못하면 그 책임이 더 무겁다. 
그러기에 어떤 사실을 보려고 하기보다 그 사실을 겪은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주어진 사실들을 믿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더욱더 감사로써 우리를 보듬으신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기회를 주시고 내 삶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감사로써 화답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살아계심을 나타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심은 이루실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할 일은 절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귀신은 우리의 모든 사실을, 책을 보듯이 상세히 보고 있다. 
내가 발걸음 떼는 것, 생각하는 조건까지 다 보고 있다. 
이런 사실에 치우치면 사람이 두려워서 아무 일도 못 한다. 
귀신의 작전은 항상 우리가 두려워서 자기의 추종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하신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예배를 통해서 내가 이제까지 잘못 살아온 범사,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조건들을 새로이 바꾸는 시간이 되게 하자. 
우리의 잘못된 범사의 조건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믿음의 삶으로 바꾸어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고 기뻐하시며 우리에게 감사로써 화답하실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천국 같지만, 이 땅에는 천국이 없다. 
어디를 가도 고민이 있고 죽음이 있다. 
이 땅은 깨닫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보고소(寶庫所)다. 
우리 조상 아담이 쫓겨난 곳이 이곳이고 여기는 감옥이다. 
여기서 천국과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해야 될 일은 내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감사할 기회를 주심에, 내게 허락하신 사랑의 조건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인다면 이곳도 천국으로 변할 수 있다. 
내가 돌아섰을 때만. 내가 돌아서지 못하면 그 순간으로 지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일이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부모를 허락하신 것,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은 이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신 조건이다. 
사람들은 누구의 자식인가에 치중하지만, 누구의 자식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단지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기에 내가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주신 사랑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내 자식이 잘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내가 이같이 사랑하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이같이 사랑하심을 내가 이제야 감사드립니다. 이제 나를 이끄심에, 나를 돌아서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내가 사용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여기서부터 첫발을 내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사는 날 동안 감사함으로,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자식으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키워가실 것이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을 내가 이같이 사랑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이같이 사랑하심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을 ‘죄’라고 하는 것이다. 
도둑질은 감옥살이하면 끝난다. 
하지만 나를 세상에 있게 하신, 생명을 허락하신 근본 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죄는 하나님께 사함을 받지 못하면 어려움을 당하고 지옥을 가야 정석이 되는 것이다.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거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같이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으로 보듬어가고, 사랑으로 자라갈 수 있는 아이가 되게 키워라. 
경쟁사회를 이겨나가거나 헤쳐나가는 아이로 키우려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보듬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같이 사랑해서 너를 내 자식으로 주신 그 사실을 바로 깨달아서 이제는 감사한다. 경쟁사회를 헤쳐가는 아이로 자라지 말고, 진정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너로 인해 네 주위 모든 사람이 참사랑을 깨닫는 일이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사랑으로써 키운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실을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경쟁사회를 헤쳐가는 사람,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해라.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 책임지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부모가 사랑으로 보듬어가는 사실을 자식에게 보여준다면, 자녀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런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서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뜻대로 삶을 살아드리는 모두가 되자. 

우리의 삶에서 보람되게 사는 방법, 능력의 삶을 사는 방법은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이루실 일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생명을 허락하셨기에 그 일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것, 이루는 것이 성공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사후의 세계에서 정리할 일이 더 어렵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동안에 “죄를 회개하라. 사랑하라”는 말은 사후에 주어질 조건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사는 날 동안 성공하고, 뭐가 되고, 이것은 하나의 너울이다. 
나를 이끄시기 위한 사랑의 방편이지 깨닫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살아있는 동안 나로 인해 내 주위 사람들이 사랑을 깨닫는 일에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자신을 온전히 사랑의 제물로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진정 깨달은 사람, 앞선 사람의 할 일이다. 
나로 인해 내 주위 형제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입각한 삶을 살아가는 일에 내가 제물이 된다면,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렸기에 우리가 믿을 때 그 삶이 우리에게 이어진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이 말은 너희가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인 줄 안다는 말이다. 
간단한 말 같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이같이 우리의 모든 사실을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 일을 자기가 책임지려고 한다.
자기가 책임지려고 하기에 없는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책임지지는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할 일은 책임을 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면 된다고 오히려 우리에게 반문하시는 것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 가운데서 모든 해답을 하나님께서 다 풀어주시겠다, 능력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자리매김하게 지혜롭게 삶을 살아드리는 모두가 되자. 

(2010.08.29.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