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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88.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 등록일 : 2026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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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15)


기본적인 세상의 흐름에 대해 알고 무엇 때문에 그런 사실이 벌어지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 그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자기의 조건에 치우쳐서 자기 생각대로 머리를 굴리면 그 은혜는 자기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 속에서 머리를 굴리는 것을 누가 감지하고 간섭하겠나?’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보고 있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돌려놓으면 천만다행이지만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그 생각을 돌리지 못하고 귀신이 좋아하는 일에 우리의 생각을 돌려놓으면 바로 생각의 경로가 바뀌어 버린다. 

남자들의 길을 제시하는 사람은 대부분 주위의 여자들이다. 
남자를 남자답게 바르게 키우고, 못 키우고는 여자가 그 일을 돕냐, 돕지 못하냐에 따라서 거의 판가름 난다. 
구약시대처럼 여자의 가치 자체를 묻어두었을 때는 그 일이 조금 쉬웠지만 현재처럼 동등한 사회에서는 여자만큼 머리를 굴리는 남자가 없다. 
남자들은 항상 멀리 본다. 
그래서 “앞으로 잘할게.”라고 하지만 여자들은 나중에 잘하는 것보다 지금 잘하라고 한다.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기에 앞서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되어서 창조주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가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게 도우라고 여자를 줬는데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파하고 자기에게 머물러 둘러 가도록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세상의 어려움도 그래서 주어졌다. 
남자는 바라봐야 할 창조주를 바라보지 못하고, 여자는 도우라고 했는데 오히려 짝짜꿍하니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자가 남자답게 되면 여자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돕는 게 당연하고, 남자는 창조주를 바라보는 그 일에 자기 삶의 모든 초점을 맞출 때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신다.

이런 사실이 말씀을 통해서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주어져도 그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끝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다. 
이 사실의 증거를 세우기 위해 ‘모세’라는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중간에 하나님의 종들을 세워 그 사실을 보게 해도 보는 것은 한순간이고, 돌아가서는 항상 자신이 보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남자와 여자,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살아간다. 그것도 좋다. 
그럴 것 같으면 창조주를 바라보는 일에 똑같이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주위에 어떠한 사태가 벌어져도 그 일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일 때문에 자기의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 
자기의 마음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마음이 상한 것을 알고 오히려 그 일에 마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이 순간부터라도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자기의 삶을 바르게 가누어 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드러내실 것이다. 
위해서 기도할 때 병자가 일어나고, 위해서 기도할 때 날씨까지 바꾸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나타내실 것이다. 

부부간, 남녀 간의 조건도 결국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주신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면 어느 시기가 지나면 그의 삶은 끝이 난다.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 
창조주를 바라보지 않는 생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것이다. 
남자가 사람이 되려면 여자가 바가지를 긁는 일을 통해서 창조주를 바라보는 일에 더욱 모든 사실을 더할 때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이 안 된다. 
여자와 함께 살려면 바가지를 긁거나 말거나 그 사실을 그대로 끌고 창조주에게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남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여자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남자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게 되면 그 입술을 통해, 그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고 그의 모든 외로움과 답답함을 도우신다.

첫 사람 아담 때부터 우리에게 세상을 허락하신 것은 ‘나’라는 존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왜 아담을 먼저 내신 후에 하와를 내셨을까? 
모든 사실을 먼저 아시고 지체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를 남자답게 만들어 놓고 난 뒤에 여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러기에 남자가 남자답게 살려면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여자는, 창조주를 바라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 주위 사람들이 되게 하는 일에 쓰임 받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드러내실 것이다. 
기본적인 이 신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제쳐두신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를 제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날을 허락하시고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신 것은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우리 앞에 대두시켜 놓고 그 사실을 보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두 눈을 뜨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창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을 다 허락했는데 그 사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금수보다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이라는 너울을 씌워서 삶을 살게 하신 것은 사람만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자기의 할 일을 분명히 해내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나’라는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드러내실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모두가 되자. 

내게 하루를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주어진 모든 매사가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을 안다면 내게 주신 모든 매사를 스스로가 관용하고 스스로가 지켜가는 데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드러내실 것이다. 
내가 숨을 쉬는 한순간, 발걸음을 떼는 한 발걸음, 손을 내미는 이 한 동작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심을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면 그 어떠한 일도 우리 앞을 가로막지 못하고 제지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내 주위 일들로 인해 마음을 상하거나 주춤해서 주눅이 드는 어리석은 자리에 서지 말자. 
‘나’라는 존재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갈 길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드러내실 것이다. 

아직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바르게 알지 못해 내 생각대로, 내게 주어지는 조건대로 생각하고 함부로 경거망동하는 우리지만 차츰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를 바르게 알게 되면 우리의 인성이 하나님께서 내신 뜻대로 바뀌어 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마6:1~15) 이 말씀은 누구나 잘 알고 기억하는 말씀이다. 
뻔히 알면서도 이 말씀을 자기와는 아무 상관 없는 양 생활하는 것이 오늘날 믿는 사람들의 조건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생각과 조건들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면, 오늘이 주일인데 내가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힘들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겠다 싶거든 위해서 기도해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떠올리고 싶거든 “아버지 하나님,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데 일이 너무 많아서, 몸이 너무 힘들어서, 내게 주어진 일이 너무 힘겹습니다. 주일 예배에 감사함으로 참석할 수 있게 나를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일어서면 모든 조건을 하나님께서 돌봐주실 텐데 그것을 자기가 하나님인 양 감당하려고 하기에 없는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길을 나 스스로가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알고 보면 너무 감사한 것이다. 
갑부든지 거지든지 똑같이 죽는다.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매사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이루실 일이 있어서 내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때가 되어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그 사실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먹고 사는 것이나 이성에 치우치니 사람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대열에 들어서려면 아무리 못해도 짐승보다는 나아야 한다. 
짐승도 자기 짝을 사랑하고 자기 새끼를 품는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영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영을 우리의 삶을 통해 정리하시기 위해, 새롭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러기에 사는 날 동안 작은 일에 얽매여 내 마음을 상하거나 흔들리는 것은 믿음의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 일이 어디서 벌어질까? 용서하지 못한 데서 벌어진다. 
내 주위 형제들의 사실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게 맡겨놓아야 하는데 내가 판단을 지어놓고 하나님께서 따라오시게 만들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는 자기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다 옳은 양하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용서하라”는 말은 내 생각에서 그 일을 판단해서 “용서할까? 말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용서하라 명령하셨으면 용서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때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드러내실 것이다. 

사울 왕과 사무엘 선지자의 관계에서 이 일이 벌어진다. 
사울 왕이 전쟁을 앞두고 급박한 상황에서 사무엘 선지자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불안한 나머지 자기가 직접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사울 왕을 향하여 그의 왕위가 길지 않음을 말하고 그때부터 다윗이 책정받게 된다. 
사울이 본 세계관과 하나님께서 보여준 세계관은 자체가 다르다. 
사울은 두려워서 자기가 제사를 드렸다. 
자기가 제사를 드리는 바람에 결국은 악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다윗이 올라서게 되고 자신은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내 개인의 생각이 옳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보실까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내 조건에서 그 일을 정리하기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끌어 오신 연유가 어디서 시작되었나?” 거기서 시작한다면 모든 사실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는 모두가 되자. 
“나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옵소서” 이것이 기본적으로 서지 못하면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 
“내가 뭘 했고, 뭘 했는데”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내가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에 동참하셨기에 역사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바로 알아서 “이 일에 나를 사용하심, 감사드립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는 모두가 되자. 
우리가 바르게 하고자 마음을 쓰면 삐뚤어지게 가는 일도 다시 돌아와서, 잘못된 그 일이 오히려 내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애를 써서 갖추어 놓아도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 끝에 가서는 잘못된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시험을 칠 때 생각이 안 나면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에 간섭하셔서 증거를 보이심에 감사하고, 간섭하시고 동참하심에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자. 

우리에게 은혜 베푸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나를 사용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기억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로 인해서 내 주위 조건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옮겨간다면, 내가 입을 다물어서 내 주위 조건들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나아간다면, 내 입술과 내 삶의 조건을 온화하게 함으로써 그 일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옮겨간다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우리의 갈 길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실 것이다. 

(2010.10.03.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