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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89.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등록일 : 202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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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창12:1~4)

우리 각자의 위치를 바로 알아서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내 위치를 지켜야 할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자. 
집에서 개를 키워보면 주인이 나타나면 자기가 하던 모든 것을 접고 주인에게로 얼굴을 향한다. 
사람이 사람의 위치관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가 키우는 개보다 못하다. 
개는 자기들끼리 아웅다웅하다 가도, 자기들끼리 놀다가도 주인이 나타나면 모든 일을 접어두고 주인에게 그 얼굴을 향한다. 
사람이 되어서 자기의 위치관을 잃어버린다면 개보다 못한 것이다. 
주인에게 사랑받는 개는 주인만 보기에 주인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자식은 자기 속으로 낳았기에 자기를 안 봐도 보게 만들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자 부모를 보게 만든다.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자,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자 불러 모았다면 그 사실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을 돌릴 수 있어야 사람이다. 
그렇지 못하면 사람의 대열에 들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할 때 내가 서 있는 위치,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람이 되려면 사람의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이라면 사람의 행색을 해줘야 한다. 
자기에게 생명과 삶을 허락하신 창조주를 바라보는 눈길이 올바른 사람이라면 생각하는 조건이나 하는 행동 자체가 달라야 정석이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 사실을 기억한다는 말이다. 
하루해 동안 나를 지키시고, 나를 통해 이루실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바라시고, 내게 무엇을 하게 하실까 그 사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자. 

사람이 되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금수보다 못한 것이다. 
사람의 너울은 썼어도 그 속에 들어 있는 생각 자체가 바르게 정립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아닌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하던 행동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내 멋대로 하던 일을 하나씩 접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모두가 되자. 

믿는 사람이 많으면 많은 만큼 세상이 충만해야 하는데 더 악해진다. 
왜 그럴까? 사람의 인성 자체를 잃어버렸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사람임을 자각하는 사고가 자리 잡은 사람이 많다면 세상이 이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야 하고,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는데 세상이 서로를 의식해서 감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들어서면 그 일 자체가 감사가 되고 온화한 기운이 돌아야 하는데, 오히려 서로를 감시하는 위치에 놓이기에 지옥이 되는 것이다.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감싸고 덮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만일 우리가 태어난 후 부모와 자식 간의 조건이 여의치 못해 헤어지게 되어 고아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면,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참담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여호와께서 객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시146:9)라고 하시며 “내가 그들을 돌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냐?”라고 하신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일을 믿지 못한다. 
나를 지키고 보호하심을 믿으면 되는데 믿지 못한다. 
그런 위치에 놓였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한다. 
자기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보듬으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데 그걸 자기가 하려고 한다. 
자기가 할 일은 일어서는 것이다. 
일어서는 자체가 능력이고 일어서는 자체가 창조주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의 할 일이다. 
그런데 거기 앉아서 주위를 살핀다. 
이런 어리석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나로 인해 이루실 일이 있어서 내게 이러한 조건을 허락하셨으면, 내가 할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간단한데, 거기서 항상 사람을 찾는다. 
찾아야 할 창조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 것이다. 

사는 날 동안 내가 1초에 한 번 숨 쉬는 것을 1초에 열 번을 숨을 쉰다고 해도 공기가 남아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숨을 쉬어도 하나님께서는 공기가 모자라게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를 위해 허락하신 세상에서 내게 해야 할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는 내 할 일을 마치기 전까지는 내게 모자람 없이 채우신다. 
‘나’라는 존재를 통해 이루실 일을 마치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 사실을 믿는 모두가 되자.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까지 보이신 그 사랑을 바라보는 일에 전념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관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 사실을 바르게 정립한다면 어떠한 사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당황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자. 

하나님께서 ‘나’라는 존재를 통해 일평생 이루실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나아간다면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앞을 가로막지 못한다.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그 사실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가 된다면 우리를 가로막을 조건은 그 어떠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바르게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을 마치기 전까지는 우리 삶의 마침표를 절대 찍지 않으신다. 

(창12:1~4)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이 사실이 기독교 역사의 하나로만 자리매김한다. 
기독교의 역사에 그쳐 버린다면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지난날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의 사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사실을 바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걸었던 그 사실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요구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모두가 되자.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삶으로 옮겨갈 때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다. 

비록 아브라함이 조금 치우치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자리를 떠나 애굽 땅으로 옮겨가서 곤욕을 치렀지만,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도 사람이기에, 어려움을 피하고자 끝내는 애굽 땅까지 가서 거기서 두려워서 자기 아내를 바로 왕에게 상납했던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벌어진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러한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믿음의 삶을 고수해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시고 그를 통해 그 후대가 그 자리를 누비게 만드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고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에게도 똑같은 사실이 벌어짐을 기억하자. 
우리의 발걸음이 아브라함처럼 어려움을 피해 가기보다 조금 힘들더라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바르게 자리매김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사람이 자라가자.

진정 아브라함의 후대 된 믿음의 사람이라면 선대가 실수한 그 일을 재차 밟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귀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믿음의 후예 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꼭 나타내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더구나 아브라함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조건을 듣지 못한 세대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듣고 그 사실의 증거를 본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더욱더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나를 위해 허락하신 내 주위 형제를 사랑 가운데 보듬으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일에 쓰임 받는 우리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꼭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통해 나타내실 것이다.

“사랑으로 우리를 보듬으시고,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조건을 허락하시고, 사랑의 조건을 통해 그 사랑을 알게 하신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사랑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남녀를 허락하시고, 후대를 허락하셔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심 감사드립니다. 사는 날 동안 귀한 사실을 바르게 깨닫고, 깨달은 사실을 알리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그 사실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통해서 꼭 나타내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2010.10.10.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