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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91.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등록일 : 2026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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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3~48)


사람이 살아있다는 자체, 숨을 쉴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사실인데 사람들은 자기 바램의 충족에 따라 모든 사실을 평가한다. 
당연히 감사할 일도 내 현재의 조건에서 그 사실을 분석해서 끝내는 감사를 잃어버리고 자기 삶에서 감사를 소생시킬 기회를 놓쳐버린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생명을 허락하시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회를 주신다. 
주어진 모든 매사에서 내 개인의 삶을 분석하느냐, 분석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감사가 주어지냐, 주어지지 않냐가 판가름이 난다. 
궁궐 같은 집에서 살고 있어도 자기 삶의 피폐한 조건을 보고 있다면 좋은 집, 좋은 침대에 누워있어도 결국은 자기 삶을 스스로가 단절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비록 허름한 집에서 잠을 자고 겨우 끼니를 때우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삶에서 거리낌이 없다면 그 무엇보다 행복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내가 눈을 뜨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맡겨진 세계가 있을 텐데” 하고 이 사실을 돌아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자. 
하게 되면 자기 삶의 가치관을 분명히 찾게 된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내 개인의 잘못된 일에 치우쳐서 자기 삶을 주눅 들게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조건을 허락하신다. 
궁궐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그의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면 그곳은 지옥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에서 자그마한 어려움 때문에 자신을 주눅 들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말자. 

우리에게 삶을 허락하신 창조주를 바라보지 않고는 땅 위에 살면서 그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 없다. 
한순간 물질로, 한순간 이성의 조건으로 평안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감사를 허락하시기 위해, 새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참삶의 가치관을 허락하시기 위해 우리의 대속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의 삶에서 참삶의 가치관을 허락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약속의 말씀이 각자에게 바르게 임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서 ‘나’라는 존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리는 일에 쓰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의 조건은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판가름이 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 그 조건을 어떻게 판가름해서, 그 조건을 통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사실만 바로 깨달으면 그 순간으로 우리의 삶은 누구보다 앞서가는 삶이 되고 감사한 삶이 된다. 
이런 아름다움이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란다. 
단 한 사람도 잘못된 일에, 주눅이 드는 일에 자신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자기 삶의 가치관만 바로 찾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은혜로, 똑같은 사랑으로 다가가신다. 
내 개인의 현재 조건, 피폐한 작은 조건 때문에 자신을 격하시키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시샘하거나 주눅 드는 것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를 향해 욕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잘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받지 않고, 회생할 기회를 줘도 그 기회를 기회로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바라는 관점에서 그 사실을 보기에 지혜가 없어진다. 
그 일을 보고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결국은 스스로가 어려움을 자초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을 감사로, 기쁨으로 살아드리는 믿음의 사람,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벽돌과 나무, 흙 중에서 어떤 재료로 지은 집이 사람에게 가장 건강할까? 옛날 흙집이다. 
요즘은 겉은 벽돌로 쌓고 안에만 흙을 발라놓고 흙집이라고 하는데 전체가 다 흙이 되어야 집이 숨을 쉰다. 
우선 보기에 피폐하다고 해서 안 좋은 집이고, 우선 보기에 좋다고 해서 좋은 집이 아니다. 
자기의 삶에서 얼마만큼 감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판가름 난다. 
아무리 극한 조건이라도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에게는 그의 앞을 가로막을 사람이 없다.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내가 감사하지 못하면 도루묵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매사, 내가 얼마만큼 감사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판가름 난다. 
아무리 피폐한 조건이라도 감사함으로 받는 마음 자세만 되면 그 자리가 아름다운 자리이다. 
하나님께서 내 심성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아시고 구역을 정했을 때 그 자리를 감사로 받아들이면 차츰차츰 내가 해야 할 일을 우리 앞에 이끌어 오신다. 
나에게 맡기신 구역과 분량이 얼마만큼인지, 어떤 분량인지 가늠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일이 있어서 나를 세상에 내셨다면, 나를 통해 이루실 일을 찾을 때까지 나의 삶이 멈추지 않도록 숨을 쉬게 만드신 것이다. 
그러기에 살아서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고 증거인 것이다. 
내가 살아서 숨을 쉰다면 어떠한 일에도 불평 불만하기보다 내 삶을 개척하는 능력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앞을 가로막지 못한다. 
우리가 진정 살아있다면 어떤 사실을 스스로가 폐쇄하고 단절하기보다 내 삶에서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갖출 건 갖추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자. 
세상이 우리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에, 나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 간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하게 하실 것이다. 

내가 바라는 그 일을 무작정 끌어들이기보다 작은 것이라도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간다면 세상이 그렇게 피폐하지는 않다. 
지혜롭게 살아가는 능력의 사람이 되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쓰임 받는 모두가 되자. 
우리가 눈만 바르게 뜨여진다면 세상이 그렇게 어려운 세상이 아니다. 
우리가 마음을 닫아버리고 마음을 열지 못하기에 어려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우선 기분이 좀 나빠도, 자존심이 상해도 내가 마음을 연다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전부가 나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음을 안다면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겠나?”가 아니라 모두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비록 넝쿨과 같은 것들이 있지만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절대 두려워하지 말자. 
골치 아픈 세상도 아니고 어려운 세상도 아니다. 
나를 위해서 예비 된 세상이기에 그런 일들은 내가 하나씩 치우면 금세 열린다. 

예를 들면, 전도하러 나간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천국 가요.” 이렇게 말하기보다 일단 그 집에 들어가서 집 안에 있는 돌이라도 하나 치우고, 자기들이 미처 치우지 못했던 휴지라도 하나 줍고, 그 집안에 널어져 있는 것 하나만 치워놔도 그들이 마음 문을 연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하게 되면 “당신이 천국 가 봤냐? 당신은 그걸 믿을지 몰라도 나는 못 믿는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먼저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어려운 조건, 미처 자기들이 보지 못한 조건을 하나씩 제거한다면 마음 문을 열게 된다. 
말보다 생활로서, 그들이 마음 문을 열게 우리가 먼저 행동으로 옮기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대화를 열 수 있도록 만드신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 어려움은 나를 위해 주어진 조건이다. 
나를 위해 주어진 조건이라면 그 일을 내가 받아들이면 그 일을 뛰어넘을 기회를 분명히 허락하신다. 
이런 사실을 바르게 인식해서 나를 위해 허락하신 모든 조건을 감사함으로 받는 능력의 사람이 되어 나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하자. 
어느 한 사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은 세상에 내시지 않는다. 
그러기에 삶에서 절대 주눅이 들거나 비관하는 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생기지 않아야 한다. 
그 일만 뛰어넘으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조건으로 분명 인도하신다. 

나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를 바르게 아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 일보다. 
“나라는 존재가 땅 위에 와서 이왕이면 좋은 집에 태어나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내 심성을 먼저 아신 하나님께서 내 심성에 꼭 맞게 자리매김하게 하신 것이다. 
비록 내 모습은 부모님을 통해 태어났기에 부모님을 닮게 만들었지만 내 속에 내재 되어있는 생명체는 부모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과 직접 상관이 된 것이다. 
부모님과 상관된 것이라면 내가 죽게 되었을 때 부모가 일어나라 하면 벌떡 일어나야 정석인데, 자식이 죽게 되었을 때 부모가 살릴 수 있냐? 살리지 못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돌보는 것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이 보낸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다. 
나만이 해야 할 일을 맡기시고 보내셨기에 이 일을 완수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당연한 할 일이다. 
이 사실을 스스로가 회피할 때, 자기 삶의 가치관을 회피할 때 ‘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이 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삶의 가치관을 바르게 깨달아서 그 삶의 가치관을 바르게 일으켜 세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신다. 
아무리 가난하고 피폐한 가정에 태어나도 그 사람만의 조건을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세상에 보내셨기에 그 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더하셔서 그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꼭 쓰임 받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원망도 더러 한다. 망나니 같은 짓도 해 보고, 내가 해 보고 싶은 대로 하면서 흘러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잘못으로 그를 판가름 짓지 않고 보듬으신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를 여기서 빼내 주신다면 앞으로는 잘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막상 빠져나오면 원래의 본성대로 돌아가서 또 일을 저지른다. 
하지만 차츰 한 걸음씩 옮겨가는 것이다.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어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 한 걸음씩 옮겨가게 하시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전부 이같이 하나님께서 키워가신다. 
그 일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눈만 뜨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꼭 역사하시고 감사로 이끌어 가신다. 
설령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믿지 않아도 그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키워나가신다. 
그러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어떠한 조건에도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마5:43~48) 이 말씀의 주 요지는 어느 한 사람도 필요치 않은 사람은 세상에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우리를 보내셨다면 필요한 자리에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각자가 되게, 내 주위 형제가 되게 서로 돕고 또 도움을 통해 서로의 자리에 바르게 안착하게 될 때,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간다는 것을 이 말씀 속에 담고 있다. 
그러기에 내 주위 형제가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사랑이다. 
내 주위 형제가 나로 인해서 자기 자리에 자리매김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게 돕는 모두가 되자. 
나로 인해 내 주위 형제가 참사랑의 가치관을 바르게 깨달아서 그 일을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연유대로 나로 인해 기뻐하시고 감사로 화답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참삶의 가치관을 사는 날 동안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도해 보자. 
“아버지 하나님! 나와 우리와 세상을 위해 나만의 할 일을 예비하시고 오늘도 하루를 나와 우리를 위해 맡기신 여호와 하나님, 나와 우리가 비록 잘못을 저지를지라도 나와 우리를 위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물로 내놓으시고 우리를 위해 속죄물로 받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만 봐도 죄사함 받을 특권까지 허락하시고 나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나의 하나님, 귀한 예배와 사랑의 생활을 통해 감사로 살아드리는 나와 우리의 하루를 이루게 성령 하나님도 보내신 나의 하나님, 나로 인해 맡겨주신 구역이 감사로 화답하는 하루를 만드는 일에 바르게 쓰임 받는 나의 하루가 되게 하소서”

믿는 사람의 입술에 이같이 떠올려지는 기도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의 모든 매사에 간섭하셔서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가 이 삶을 바르게 이수하고자 마음을 드린다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그 연유를 사는 날 동안 꼭 이루게 하실 것이다. 

(2010.10.24. 주일 / 김영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