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16:1~4)
가정에서 밥상을 대할 때 그 밥상이 차려지기까지 수고한 아내나 엄마의 손길이 있다. 
짬을 몰라서 그냥 먹는 가족도 있겠지만 그나마 수고한 손길에 대해 조금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말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예배를 드릴 때도 똑같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조건임을 떠올려서 진짜 마음에 감사해서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노래로써 얼버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밥상을 대하는 가족 중 그 일이 있기까지 수고한 사람의 일을 마음에 담고 먹는 사람도 있고 사랑 가운데서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터전을 허락하시고 그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게 조건을 허락하심에 감사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어영부영 따라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중을 살펴보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과연 똑같이 은혜를 허락하신다면 누구부터 떠올려서 이끌어 가실까?
“누가 장에 간다고 하니 재거름 지고 따라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장에 간다고 하니 이유도 모르고 밭에 뿌려야 할 재거름을 지고 장에 가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니 아무 생각도 없이 나도 찬송을 불러야지 한다. 
그 가운데서 뒤늦게라도 자기의 마음에 감사와 기쁨을 허락하시기 위해 주신 조건임을 깨달으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정말 망치는 것이다. 
그냥 얼렁뚱땅 자리매김만 하는 그 사람의 속내를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우주 만물을 창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속내를 아시기에 그의 갈 길을 절대 쉽게 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숨이 붙어 있을 만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만 도우실 것이다. 
그의 일이 자기가 바라는 만큼 따라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우리의 생활에서 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 길이 잘 열리기를 바라고 내가 바라는 바램대로 이어지기를 바라거든, 가정이라면 가장의 바램대로 따라라. 그러면 일이 쉽게 열린다. 
회사라면 그 회사의 장의 바램을 따라서 삶을 따라 붙여라. 하게 되면 여러분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삶을 사는 우리라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순종해라. 
“하나님이 어디에 있나?”라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명 속에 계신다. 
두 눈을 깜박이고 코로 숨을 쉬면서 두 팔을 흔들고 두 다리로 걸어가는 여러분의 생명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가 하는 말이 나는 분명 성공할 거라고 한다. 천만에다. 성공하지 못한다. 
사랑하시기에 깨닫게 하시기 위해 그의 모든 일이 실패하게 만드신다. 
“내 일은 분명히 성공한다.”라고 하지만, 천만에다. 실패해서 입을 떼지 못하게 만드신다. 
성공하는 방법은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여러분의 삶을 내놓아야 한다. 
내놓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해 먼저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에 기쁨이 주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갈 길과 계획한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그렇게 하지 않고 여러분이 계획한 일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순간부터 되돌아서자. 되돌아서지 않으면 크게 후회한다. 
여러분이 계획한 사실이 눈 녹듯이 다 무너진다.
사랑하시기에 이 말씀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계획한 사실을 바꾸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여러분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자. 
그렇게 해야 그 일이 성공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가슴을 칠 날이 온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대로 여러분의 삶을 내놓게 되면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해 꼭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분명히 나타내실 것이다. 
믿는 사람 중에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예배 시간도 상관하지 않는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무작정 소리 내어 운다. 
내가 울고 떼를 쓰면 엄마가 온다는 그 사실만 안다. 
어린아이의 편에서는 당연하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그 일이 성공하려면 안되면 어린아이의 위치에라도 서라. 
‘어린아이’라는 말은 “나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가 오면 울다가도 바로 울음을 그친다. 
예배의 주목적은 내 생명의 가치관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자체, 그 가치관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소용이 없다. 
자신을 찾는 시간이 예배 시간이다. 
성공하고 싶으면 무엇 때문에 내게 이러한 사실을 허락하셨고, 이러한 일을 내 앞에 두셨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아이는 자기가 풀지 못하는 문제가 나오면 거기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들고 그 사실을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들고 간다. 
찬송한다고, 기도한다고 예배가 아니다.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내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삶을 허락하셨는지 그 가치관을 찾아가는 것이 예배다. 
예배의 참 의미를 모르고 앉아 있으면 예배가 지루하고 아무 재미가 없다. 
사람의 참 가치관을 모르기에 예배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예배는 그렇게 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딱 맞는 범사를 각자에게 허락하셨다. 
그에게 딱 맞는 범사를 허락하셔서 그의 일생을 통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가게 만드셨다. 
자기의 존재가치와 자기가 서 있는 위치만 바로 알아도 성공한 사람이다. 
판사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위치관만 바로 알아도 성공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조건을 다 지켜보고 계신다. 
몸 전체에서 손가락은 아주 작은 부분인데도 바늘로 찌르면 우리는 아프다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모든 조건을 하나의 조건으로 보시고 한 생명으로 보신다. 
사랑 가운데 허락된 그 생명이 자기 생각에는 자기의 생명 같지만, 그 생명의 근원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끝내는 그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사랑하라 하신 것은 나 자신을 위해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도 우리가 우리 생각에 치우쳐서 내 뜻대로, 내 조건대로 모든 사실을 진행해서 망할 것을 뻔히 아신 것이다. 
사사와 선지자들을 보내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좋은 길을 제시해 줘도 돌아서지 않기에 끝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보기만 해도 모든 사실이 환원될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개인의 풍요로움과 안일한 조건만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망해야 정석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시고, 주위 형제를 돌보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이루는 일에 통로가 되라는 데서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세상 모든 매사 “하나님께서 이 일을 봤을 때, 내 조건을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사실을 기억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내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거든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실까?”를 돌아보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회개한 심령을 기뻐하신다(시5:17, 눅15:7)는 말은 “바른말을 할 때 바로 돌아선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이다. 
“예, 당장 돌아서겠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어려움을 겪고 돌아오기보다 이왕이면 멀쩡할 때 돌아오자.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서 스스로 자신을 폐쇄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놓이지 않아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이 정신을 차려서 자신을 찾아가는 자체가 예배이다. 
자신을 찾지 못하면 그 예배는 예배가 아니라 넋두리다. 
모든 매사에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는 모두가 되자.
내가 뭔가를 잘해서, 내가 기도를 잘해서,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작정하시고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 일을 맡기셨는지, 순종하고 따라가면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배후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생활을 바꿔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우리의 삶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자.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통해서 꼭 드러내실 것이다. 
(잠16:1~4) 이 말씀은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실망을 금치 못하신다. 그러기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이다.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를 통해 드러내신다. 
우리의 발걸음마다, 입술 떼는 조건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내가 현재 일구어 가는 이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 받는 내 입술과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내 사업이 되게 하소서.”라고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시고 함께 하실 것이다.
(2010.10.31. 주일 / 김영호 목사)